표류도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떠다니는 섬의 존재방식 - 사랑

사람을 표현하는 말에는 다양한 표현이 있다. 사람의 어떤 점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사람의 사회적 속성 중 해결되지 못하는 근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라는 군중 속에 얽혀 살면서도 늘 고독한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방식에 대한 표현으로 ‘섬’이라는 외부로부터 단절된 공간을 써서 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정현종 시인의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섬이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섬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독감이나 소외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와는 달리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이 아닌 사람 자체가 하나의 섬이라고 보며 그 섬은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닌 표류하고 있다고 보는 작품이 있다. 박경리의 장편소설 “표류도”가 그것이다. “표류도”는 “토지”로 유명한 한국문학의 대표작가 박경리의 초기작품이다.

 

삼십 대 초반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강현회와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신문사 논설위원인 이상현과의 사랑이야기가 중심 줄거리다. 여주인공 강연회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한국전쟁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미혼모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다 마돈나라는 다방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상현은 사랑 없는 결혼으로 가정을 꾸렸지만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가며 혼란기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사명에 호응하려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주요한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불륜”이다.

 

“불륜”도 남녀 간의 서로를 향한 감정에 기초한 것이기에 보통의 사랑이야기처럼 기승전결이 있다. 만나고 우여곡절을 겪다가 헤어지는 결론에 이른다.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이기에 여기에는 부담스러운 사회적 시선까지 감내해야하는 마음의 부담감까지 함께한다. 온갖 사람들의 정거장인 다방 마돈나에는 삶을 살아가는 군상의 모습이 펼쳐진다. 카운터에 앉은 현회는 다방을 찾는 손님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속성을 살피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의 증인과도 같은 출판사 김 사장은 현회의 불안한 일상에 비빌 언덕으로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상황 반전이 일어난다. 현회의 우발적인 살인이 그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불안했던 상현과의 사랑은 끝이 난다.

 

“전쟁, 죽음, 기아, 사랑,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이러한 인간사를 나도 이제 웬만큼 겪은 셈이다. 사람도 죽였고, 죄수라는 이름도 붙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막다른 골목까지 온 셈이다.”

자신을 지탱해 주던 의지가 꺾인 현회에게 출판사 김 사장은 인간의 의지작용의 긍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삶을 포기하려는 현회의 마음을 붙잡는다. 사람의 삶이란 표류하는 섬처럼 떠다나다가 물속으로 잠기게 마련이며 물속으로 잠기기 전까진 의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표류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방향이나 목적을 잃고 헤맴 또는 일정한 원칙이나 주관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림”을 뜻한다. 각각 떨어져 떠내려가는 섬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미래를 알 수 없는 삶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줄거리이지만 사랑의 감정보다는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질문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섬처럼 떠다니는 삶 속에서 그 삶을 지탱해주는 인간의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조는 인간의 근본 속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 삶 모두를 관통하는 근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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