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불빛이 누구를 위해 타고 있다는 설은 철없는 음유시인들의 장난이다. 불빛은 그저 자기가 타고 있을 뿐이다. 불빛이 내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내가 불빛이었던 적이 있는가.

가끔씩 누군가 내 대신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 대신 지하도를 건너지도 않고, 대학병원 복도를 서성이지도 않고, 잡지를 뒤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사실이 겨울날 새벽보다도 시원한 순간이 있다. 직립 이후 중력과 싸워온 나에게 남겨진 고독이라는 거. 그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 있다.

살을 섞었다는 말처럼 어리숙한 거짓말은 없다. 그건 섞이지 않는다.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다시 밖으로 나갈 자다.

세찬 빗줄기가 무엇 하나 비켜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남겨놓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그 비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있었던가. 나를 용서한 적이 있었던가.

숨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허연의 시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다. 안과 밖, 너와 나?애써 구분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것임을 안다. 이제 아찔함을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서지 않을 정도 만큼만 안고 살아갈 뿐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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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라고 하지만 쉬지도 않고 내린다. 굵게 때론 가늘게 스스로를 조절하는 듯 싶지만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물이 흘러가버린 강에는 물이 다시 차오른다. 

물이 흘러간 자리는 다음에 온 물이 자리를 채운다지만 떠난 사람의 자리는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빈자리를 채우는건 남은 이의 몫이다. 2018.7.23 요사이 유독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건 남은 이들이 제 일을 못하기 때문이리라. 

"꽃에 물든 마음만 남았어라
전부 버렸다고 생각한 이 몸속에"

*벚꽃과 달을 사랑하며 일본의 헤이안 시대를 살았던 가인으로 다양한 작품을 남긴 '사이교'의 노래다.

물 위로 고개를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몸을 낮춘다. 스치는 풍경이 아니라 주목하여 멈추는 일이고, 애써 마련해둔 틈으로 대상의 색과 향기를 받아들이는 정성스런 마음짓이다.

꽃은 보는이의 마음에 피어 비로소 향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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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파도를 건너온 이가 조용한 반격에 나섰다. '칼에는 눈이 없다'고 했던가. 이 말의 무게를 자신을 겨냥했던 파도와의 정면대결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한다. 침묵하는듯 싶지만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남겨진 흔적이 크고 깊다. 진짜의 세상이다.

"이를테면 공갈빵 같은 거
속을 보여주고 싶은데
알맹이 없는 껍질뿐이네
헛다리짚고 헛물켜고
열차 속에서 잠깐 사귄 애인 같은 거
속마음 알 수 없으니
진짜 같은 가짜 마음만 흔들어주었네"

이임숙의 '헛꽃'이라는 시의 일부다. 열매 맺지 못하는 꽃을 헛꽃이라 부르는 이유야 분명하겠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어디 참꽃만 있던가. 화려하게 유혹하는 이 헛꽃의 무상함을 알면서도 기대고, 짐짓 모른척하면서도 기대어 그렇게 묻어가는 것들이 삶에서 오히려 빈번하다.

헛꽃은 바라보는 대상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게도 있다. 이런 헛꽃들이 만나 헛세상을 만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헛세상인줄 모른다. 그래서 헛마음으로 사는 헛세상은 늘 힘들고 외롭고 제 힘으로 건너기 버거운 세상이 된다.

헛꽃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서툴고 여린 속내를 어쩌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만이 참이라 여기는 그 마음에 피어나는 것이 헛꽃이리라.

산수국의 헛꽃이다. 아직은 해야할 사명이 있기에 본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참꽃보다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매개체를 유혹하는 사명을 다하다 제 할일이 끝나면 뒤집어져 이렇게 임무완수의 표시를 한다. 매개체의 헛수고를 덜어주려는 배려가 담겼다. 식물의 헛꽃은 그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끝마무리 까지하고서 생을 마감한다. 그렇더라도 헛꽃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헛꽃만 피고 지는 이 자리
헛되고 헛되니 헛될 수 없어서 헛되도다"

혹여, 내 일상의 몸짓이 이 헛꽃보다 못한 허망한 것은 아닐까. 시인이 경고한 헛꽃의 그 자리를 돌아보는 것은 연일 폭염보다 더한 사람의 허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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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리'
뜰에 참나리가 한창이다. 터전을 옮긴 초기, 이웃 마을에서 얻어온 하나가 제법 풍성하게 번졌다. 이웃나눔의 우선 대상이 될만큼 잘 자란다. 올해 참나리는 제주 바닷가에서 먼저 봤다. 무리지어 또는 홀로 피어도 존재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검은돌 사이에서 피는 주황색 꽃이 돋보인다.

'참나리'란 나리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으로 ‘참’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고 한다. 나리 종류로는 땅나리, 중나리, 털중나리, 하늘나리, 날개하늘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섬말나리 등 다양하다.

참나리의 줄기에 까만색의 살눈이 떨어져 번식한다. 꽃에 주근깨가 많고 줄기에 까만색의 살눈으로 다른 나리들과 쉽게 구분한다.

무더위 속에서 오랫동안 피어있어 여름을 대표하는 꽃으로 불러도 될만하다. 꽃말은 ‘순결’, ‘깨끗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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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緣'
굳이 말이 필요없다. 언어 이전에 이미 감지하고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영역이 여기에 속한다. 하여, 언어로 설명하기엔 부족하고 어설프다. "어떻게 알았을까?" 이 마음 만으로 충분하다.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마음 같은 것. 빛과 어둠이 서로를 의지하여 깊어지는 것. 사람도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결에 의지하여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시간을 공들여 쌓아가야 가능한 일이다.

비는 오지 않을거란 근거없는 확신이 있었다. 이른 시간 길을 나서 산에 올랐다. 자욱한 안개 속 서두르지 않은 여유롭고 걷는다. 저 모퉁이 돌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리터리풀, 여름 한철 꽃몸살 앓게하는 녀석이지만 그리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한번 눈맞춤한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하는 꽃이다. 안으로만 쌓아온 붉디붉은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결코 선을 넘지 않은 절제가 있다.

여명을 헤치고 길을 나선 마음이 꽃을 사이에 두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지만 재촉하지 않은 시간을 함께 누린다. 꽃이 전하는 마음을 이미 가득 담았으니 어기에 무엇을 더하랴.

때를 얻어 꽃을 피우고 때에 이른이가 때를 만나 꽃을 본다.
연緣은 연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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