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불빛이 누구를 위해 타고 있다는 설은 철없는 음유시인들의 장난이다. 불빛은 그저 자기가 타고 있을 뿐이다. 불빛이 내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내가 불빛이었던 적이 있는가.

가끔씩 누군가 내 대신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 대신 지하도를 건너지도 않고, 대학병원 복도를 서성이지도 않고, 잡지를 뒤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사실이 겨울날 새벽보다도 시원한 순간이 있다. 직립 이후 중력과 싸워온 나에게 남겨진 고독이라는 거. 그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 있다.

살을 섞었다는 말처럼 어리숙한 거짓말은 없다. 그건 섞이지 않는다.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다시 밖으로 나갈 자다.

세찬 빗줄기가 무엇 하나 비켜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남겨놓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그 비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있었던가. 나를 용서한 적이 있었던가.

숨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허연의 시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다. 안과 밖, 너와 나?애써 구분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것임을 안다. 이제 아찔함을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서지 않을 정도 만큼만 안고 살아갈 뿐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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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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