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암 안태중 전각전
"전무후무"
ㆍ2020. 12. 3(목)~16(수)
ㆍ갤러리 107
전남 곡성군 곡성읍 중앙로 107

*前無後無
앞도 없고 뒤도 없다
나아가고 물러설 곳도 소용이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이 세워진 송곳 같다
존재는 늘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 흔들리는 흔적들이 쌓여 무늬를 만들고
궤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뿐,
馬耳에 스쳐지나는 봄바람이다

그냥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냥 살아 간다
특별할 것도 그리울 것도, 딱히 할 말도 없다
벗이 찾아오면 반갑고 졸리면 잠을 잔다
가끔 그대 웃음이 하얗게 빛날 때
물든 가을 여뀌꽃 한줌 꺾어 화병에 담으면
살며시 심쿵거린다
깊어지는 것들은 갇히기 쉽고
부서지는 것들은 흩어져버리기 쉽다
그만큼 만, 이름 모를 들꽃 그 모양만큼만
살아 내기로 한다

좋은 말도 다 하지 않기로 한다
말을 줄이니 분주함이 줄어들고
분주함이 줄어드니 사유가 가볍다
선량한 바람이 어께에 인다

보풀 같은 작은 그리움들,
아직 넘기지 못한 미련들이 토해놓은, 어줍잖은 작품들이다
제현의 아량과 가호가 있기를?.
(度齊에서 야암 안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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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날이다. 한 이틀 비오고 흐려 기운을 빼놓더니 이를 만회라도 하듯 따스한 볕이 뜰에 가득하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한팔의 부자연스러움이 주는 어색함이 일상에서 머물더니 그것도 익숙해질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찾아온 무력감에 몸도 마음도 붙잡히더니 움직임의 반경을 좁혀온다. 이를 애써 모른척하며 붓을 들어 그리는 것인지 쓰는 것인지도 모를 글자를 종이에 옮기는 시간만 늘어간다.

어느덧 팔의 움직임에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 다 채워져감을 느끼지만 일상을 지배하는 무력감 역시 무게를 더하고 있다.

생명을 다했다고 보여지는 저 나무는 어떨까. 새순을 내며 무수한 시간을 살아왔고 더이상 낙엽을 떨구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나로써는 쓰러져 땅으로 돌아갈 나무의 남은 시간도 가늠할 수 없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듯 보이는 저 나무의 힘은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일까. 제 성질대로 키를 키우고 가지를 펼치며 살다 어느덧 다 내어주었다. 그러고도 남은 일생을 묵묵히 감당해가는 나무의 위로가 따뜻하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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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편지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곽재구의 시 '새벽 편지'다. 각자의 방식으로 맞이하는 새벽에 누군가의 온기 가득한 인사를 받는다면 반짝이는 별을 가슴에 품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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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素'
겨울 첫날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서예가 박덕준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안으로만 파고드는 소리로 가만히 읊조린다.

소素=맑다. 희다. 깨끗하다.
근본, 바탕, 본래 등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 자리가 항백恒白이다.

겨울의 첫날이 가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다. 손끝이 저린 차가움으로 하루를 열더니 이내 풀어져 봄날의 따스함과 가을날의 푸르름을 그대로 품었다. 맑고 푸르러 더욱 깊어진 자리에 명징明澄함이 있다. 소素, 항백恒白을 떠올리는 겨울 첫날이 더없이 여여如如하다.

소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첫자리에 글자 하나를 놓는다.

*다시 1년을 더한다. 1년 전 그날이나 다시 1년을 더하는 오늘이나 지향하는 삶의 자세는 다르지 않다.

종이에 스며든 먹빛과 글자가 가진 독특한 리듬에서 한 폭의 그림의 실체를 봤다. 이 글자 소素가 가진 힘도 다르지 않음을 안다. 쌓인 시간의 무게를 더한 반영反映이 지금의 내 마음자리일까. 항백 박덕준 서예가의 소素를 그 자리에 다시 놓는다.

파아란 하늘빛 닮은 차가운 공기가 성급하게 얼굴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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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를 무사히 건너왔다. 7주,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조금은 다른 일상이라 이 변화를 순조롭게 적응하는 몸 보다 불편함으로 주춤거리는 것은 마음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더딘 첫날을 보냈다. 바람은 적당하고 볕은 좋았고 가벼운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 역시 좋았지만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치과를 다녀왔다. 몸의 긴장이 풀리기엔 다소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몇번을 더 통과해야하는 강요된 시간이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내내 눈맞춤한 달의 위로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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