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得者有窮, 而不得者無窮
其生者有涯, 而其死者無涯
如是而求無盡於有盡之域
是造物者之賊也

얻는 건 다함이 있지만 얻지 못하는 건 다함이 없고
사는 건 끝이 있지만 죽는 건 끝이 없다
이와 같이 다함이 있는 경지에서 다함이 없는 걸 구하니
이것은 조물자의 적이다.

*유몽인의 무진정기無盡亭記에 나오는 문장이다. 無盡무진에 주목하다 발견한 문장으로 그 의미에공감하는 바가 있어 옮겨왔다.

無盡무진, 다함이 없다. 30대 중반에 얻은 이름이다. 내게 이름은 준 이는 다만 重重無盡중중무진 만을 전하며 미소지을 뿐이었다. 重重無盡중중무진이란, 화엄경에 나온 말로 우주만유 일체의 사물이 서로 무한한 관계를 가지고 얽히고 설켜 일체화 되어있다는 말이다.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이름을 얻은 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았으나 무엇하나 명확한 것은 없다.

無盡무진, 단어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버거운 것은 사실이나 딱히 그 무게에 갇힐 이유도 없기에 이름과 함께 무사히 건너온 시간이라 여긴다. 그사이 이와 비슷한 무게로 내거 온 이름이 더 있다. 一再일재와 平淡평담이 그것이다.

오늘에 이르러 당도한 곳이 여기다.

"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이면 만족한다"

서각전시회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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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잡초 뽑기

호미로 흙을 파면서
잡초를 뽑는다
잡초들은 내 손으로 어김없이 뽑혀지고
뽑혀진 잡초들은 장외場外로 사라진다
옥석玉石을 구분하는 나의 손도 떨린다
하늘은 이 잡초를 길러내셨으나
오늘은 내가 뽑아내고 있다
밭을 절반쯤 매면서
문득 나는 깨달았다
이 밭에서 잡초로 뽑혀나갈 명단 속에
아, 어느새 내 이름도 들어가 있구나!

*김종해의 시 '잡초 뽑기'다. 반세기를 돌아서도 한참 더 나간 지점에 이르렀다. 뽑혀나갈 명단에 내 이름도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애써 거리를 두고 벽을 세우지는 말자.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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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바람꽃'

발품 팔아 제법 많은 산들꽃들을 만나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이유가 일상에 휘둘리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은 마음의 반영인듯 싶다. 못 본 꽃이면 보고 싶다가도 일단 보게 되면 그 꽃에서 다른 모습을 찾게 된다.

 

남바람꽃, 가까운 곳에 두곳의 자생지가 있어 비교적 쉽게 만나는 꽃이다. 한곳은 사랑들의 발길에 허물어지는 것이 안타깝고, 한곳은 굴곡의 현대사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에 피어 있어 더 특별하다.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바람꽃 종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니 다소 싱겁지만 꽃이 전하는 자태만큼은 어느 꽃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만큼 아름답다. 특히 막 피기 시작할 때 보여주는 꽃잎의 색감은 환상적이다. 진분홍빛의 뒷모습이 풍기는 그 아련함을 주목하게 만든다.

 

적당히 나이들어 이제는 삶의 진면목을 아는듯한 여유로움에서 오는 뒷모습이 곱게 나이들어가는 여인네를 연상케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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泉涸之魚 相濡以沫 천후지어 상유이말

마른샘의 물고기가 거품으로 서로를 적신다

극한 어려움 속에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모습을 비유할 때 흔히 인용하는 말로 장자(壯子) ‘대종사(大宗師)’ 편에 나온다.

오래 묵은 나무를 얻었다. 다듬는 과정에서 기묘하게 갈라지니 두마리의 물고기가 왔다. 여기에 새겨 두고 오랫동안 함께 할 글을 얻었다. 같은 뜻의 문장을 한자와 한글로 나눠 새겼다. 두마리가 마주보고 서로를 다독인다.

서각전시회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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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물'

왜 자꾸 마음이 그곳으로 가는 것일까. 몇 년 전 어느 시인은 억울한 영혼들이 묻힌 곳에는 어김없이 피어난다는 피나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후로는 일부러 꽂 필 때를 기다려 찾아간다. 지천으로 핀 다른 꽂 보다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피나물 곁에서 더 오랫동안 머무르다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더디게 옮겼다. 늘 눈에 밟히는 그곳의 피나물 모습에 꽃 피는 때를 기다려 해마다 다시 찾아간다.

 

샛노랗다. 꽃잎도 꽃술도 온통 노랑색이어서 더 강한 울림이 전해지는 것일까. 과한듯 하면서도 한없이 포근한 온기를 전해주는 것이 할 수만 있다면 저 무리 속에 누워 한동안 안겨있고 싶은 마음이다.

 

'피나물'이라는 이름은 연한 줄기와 잎을 꺾으면 피血와 비슷한 적황색의 유액이 나와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여름이 되면 잎과 줄기는 없어지고 무 열매를 닮은 열매를 맺는다. 유사한 종류로 '애기똥풀'과 '매미꽃'이 있다. 주의깊게 관찰하면 구분이 어렵지 않다.

 

홀로서도 빛나지만 무리지어 그 빛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숲에서 마주하면 나비가 날아가는 듯한 연상이 되는데 '봄나비'라는 꽃말이 잘 어울린다. 올해는 비오는 날을 포함해서 세번의 눈맞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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