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사람들은 왜 모를까​​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느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김용택 시인의 "사람들은 왜 모를까​​"다. 급하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변해가는 산빛을 볼 일이다. 그 안에 내가 있고 그대 또한 있으니ᆢ.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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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나 짙은 안개, 사나운 바람이 불어도 가리지 않는다. 1년 중 봄놀이에 비 오고 안개 끼고 바람 부는 날을 제외하면 놀 만한 날이 매우 적다. 비 오는데 노는 것을 ‘꽃 씻는 일(세화역 洗化役)’이라 하고, 안개 자욱한데 노는 것을 ‘꽃을 촉촉하게 하는 일(윤화역 潤化役)’이라 하며, 바람 부는데 노는 것을 ‘꽃을 보호하는 일(호화역 護化役)’이라 한다. 옷과 신발을 아까워하여 병을 핑계대고 미루면서 미적미적하며 가지 않는 자는 아래 따로 적은 것과 같이 벌을 받는다."

*조선 후기 사람 권상신(權常愼, 1754~1824)이 ‘남고춘약(南皐春約)’의 두번째 규약이다. 그는 1784년 음력 3월 어느 날 벗들에게 남산에서 꽃놀이를 제안했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벗의 말에 날씨에 구애받지 말고 꽃놀이 가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꽃놀이 길에선 보조를 맞춰 걷자는 규칙도 붙였다. 물론 벌칙도 있다. 꽃을 꺾어도, 잘 걷는다고 혼자만 가도, 규정시간이 지났는데 글을 못 짓고 끙끙거려도, 술잔을 잡고 가만있어도 벌주를 받는다. 재미있는 건 술이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다. 도저히 못 마시겠으면 술을 꽃 아래에 부으면서 머리를 조아려 “삼가 꽃의 신이시여. 주량을 살피소서. 주량이 정말 적어 술을 땅에 붓습니다” 하고 고해야 한다.

봄날 선비들의 꽃놀이 풍경이다. 옛사람들만 이렇게 놀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주말 멀리서 벗들이 왔다. 하룻밤을 묵는동안 꽃을 사이에 두고 정담을 나눈 시간이 봄날처럼 짧았다. 오랜만에 만났고 더욱 오지 못한 벗들에 대한 마음이 더해지니 벗들과의 꽃놀이가 늘 아쉬운 이유다.

꽃놀이 하느라 짧은 봄날이 더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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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다소곳하지만 은근함으로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 흰색의 노루귀라면 청색의 노루귀는 화사하고 신비스런 색감으로 단번에 이목을 끈다. 하얀색과 청색의 이 두가지 색이 주는 강렬한 맛에 분홍이나 기타 다른 색의 노루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극히 편애한다.
 
긴 겨울을 지나 꽃이 귀한 이른봄 이쁘게도 피니 수난을 많이 당하는 꽃이다. 몇년 동안 지켜본 자생지가 지난해 봄 파괴된 현장을 목격하곤 그 곱고 귀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안타까워 그후로 다시 그곳에 가지 못하고 있다. 자연의 복원력을 믿기에 시간을 두고 멀리서 지켜볼 것이다.
 
유난히 느긋하게 맞이하는 봄이다. 홍역을 치루고 있는 전염병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여유로워진 마음 탓도 있다.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꽃세상에 머뭇거림이나 주저함이 아닌 느긋하게 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때문이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도 꽃 보는 마음과 닮아가길 소망한다.
 
올해 청노루귀 보는 것은 때를 놓친 것이 아쉬웠다. 뒤늦게 찾은 곳에서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정도로 간신히 눈맞춤 했으니 이걸로 다소 위안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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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日閒居 춘일한거
不禁山有亂 불금산유난
還憐徑草多 환련경초다
可人期不至 가인기부지
奈此緣樽何 내차연준하

한가한 봄날에
산에 여기저기 꽃피는 것 말릴 수 없어
여기저기 불어난 길가의 풀 더욱 아까워라
온다고 약속한 사람 오지 않으니
이 녹음 속에 놓여진 술 항아리를 어찌하나

*조선 사람 퇴계 이황 退溪 李滉(1501~1570)이 두보의 6자 절구시를 차운한 춘일한거春日閒居 6수 중의 한 수이다. 시절을 뛰어 넘어 봄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슬렁거리는 숲속의 시간이 좋다. 몸보다 분주한 눈이라지만 느긋한 마음 가운데 일이라 그마저도 한가롭다. 뜻 맞는 벗과 소일하는 시간이 꽃 보는 마음보다 크기에 꽃길에 늘 벗이 있다.

먼 시간을 돌고돌아 온다는 벗이 이번에도 못 온다는 기별이다. 서운함이야 기다리는 이보다 못 오는 벗이 더하겠지만 못내 아쉬움이 크다. "녹음 속에 놓여진 술항아리"야 다음에 열면 되겠지만 준비해 둔 꽃자리를 함께 걷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몸 잘 보살피시라 기다리는 꽃은 때마다 있으니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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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예쁘게 피었습니다."

벚꽃이 만개한 섬진강 기슭에서 날아온 꽃소식이다. 몇해 전 팥꽃나무 묘목을 들고가 뜰 가장자리에 함께 심었다. 그 나무가 잘 자리잡고 커가며 꽃을 피웠다고 사진과 함께 꽃소식을 전해왔다.

첫만남에서부터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이를 만나는 특별함 감정이 있었다. 그 특별함을 간직하고자 마음 담은 나무를 선물한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짐작했으리라. 정성스럽게 돌봐 온 결과가 무럭무럭 자라서 보라색 마음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간혹 이렇게 사람에게 나무를 건네는 경우가 있다. 그가 사는 뜰에서 나무가 자라고 커가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 가꿔가는 마음밭이 깊고 넓게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무를 가꾸듯 사람의 관계도 정성을 들여야 향기나는 만남이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겨울 내 시끄러웠던 속내를 달래준 달빛쑥차와 달빛강정을 만드는 분이다. 소의 왕눈을 닮은 순박함에서 묻어나는 삶의 향기가 특별한 분이다. 이야기를 파는 점빵 달빛농가의 주인이기도 하다.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의 공상균 작가다.

"두세 해 더 키워서 수형도 멋지게 만들게요 ㅎㅎ"

이 봄이 끝나기 전에 차 한잔 놓고 미소지을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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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06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팥꽃나무
너무 예뻐요

무진無盡 2022-04-07 19:29   좋아요 1 | URL
신비로운 보라색으로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