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살고 싶은 선비의 서툰 세상 나들이를 위로하는 것이 지는 매화이고, 아플 것을 지레짐작하며 미리 포기하고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 벚꽃이다. 있을때 다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뒷북치며 매달리다 스스로 부끄러워 붉어지는 것이 동백이고, 헤어짐의 불편한 속내를 위로 하는 것이 즈려밟는 진달래다. 소의 눈망울을 닮은 사내의 가슴에 닭똥같은 눈물방울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 지는 산벚꽃이고, 지극정성을 다한 후 처절하게 지고마는 것이 목련과 노각나무 꽃이다.

늘 다녀서 익숙한 계곡에 들던 어느날, 다 타버리고 남은 희나리 처럼 물위어 떠 있던 노각나무 꽃무덤을 발견했다.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먹먹함에 한동안 꼼짝도 못한 채 물끄러미 꽃무덤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가 올 봄에도 이어진다. 매화의 수줍은 낙화로 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는 살구나무에서 멈추었다가 벚꽃과 진달래, 철쭉으로 이어진다. 삼백예순날을 기다려 마주한 모란에서는 닷세동안 주춤거린다. 때죽나무와 쪽동백에서 다시 시작되어 여름철 노각나무에 이르러 큰 고개를 넘는다. 찬바람 불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꽃 지는 모습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몸과 마음을 하얗게 불사르고 난 후에도 순결한 속내를 고스란히 간직한 때죽나무와 쪽동백처럼 뒷 모습이 당당한 꽃을 가슴에 담는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꽃무덤 찾는 발걸음 마다 꽃의 정령이 깃들어 내 가슴에서 다시 꽃으로 필 것을 믿는다.

조용히 꽃무덤 앞에 두손 모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읽는수요일

사랑

연초록 껍질에
촘촘 가시를 달고 있는
장미꽃을 한 아름 산다.

네가 나에게 꽃인 동안
내 몸에도 가시 돋는다.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가시로 서로를 껴안는다는 것

꽃망울에게 싱긋
윙크를 하자
눈물 한 방울 떨어진다.

그래, 사랑의 가시라는 거
한낱 모가 난 껍질일 뿐

꽃잎이 진 자리와
가시가 떨어져 나간 자리, 모두
눈물 마른자리 동그랗다.

우리 사랑도, 분명
희고 둥근 방을 가질 것이다.

*이정록 시인의 시 "사랑"이다. "네가 나에게 꽃인 동안,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가시로 서로를 껴안는다는 것" 가시는 서로에게 상처일 뿐일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통밀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로 봄도 끝자락이다. 매서운 겨울의 눈보라가 봄의 화려한 꽃향기를 준비했듯 나풀거렸던 봄향기로 맺은 열매는 이제 여름의 폭염으로 굵고 단단하게 영글어 갈 것이다.

미쳐 보내지 못한 봄의 속도 보다 성급한 여름은 이미 코앞에 당도해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짐작되는 변화보다 예측할 수 없이 당면해야 하는 폭염 속 헉헉댈 하루하루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그 숲을 걷거나, 숲에 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숲이 전해준 위안을 꺼내보며 스스로를 다독일 일이다.

시간의 경계에서 피고지는 생명들의 일상을 본다. 나뭇잎을 사이에 두고 태양과의 눈맞춤으로 좋은 때가 건너가고 있다. 뜨거워질 세상을 향한 꿈틀대는 생명의 힘이기에 그 출발에 마음 한쪽을 기댄다.

오월 그리고 봄의 끝자락, 시간에 벽을 세우거나 자를 수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 그렇더라도 맺힌 것은 풀어야 하듯이 때론 흐르는 것을 가둘 필요가 있다. 물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시간이 그렇다. 일부러 앞서거나 뒤처지지는 말고 나란히 걷자.

이별은 짧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란'
불갑사 대웅전 옆에서 정갈한 모습으로 만났었다. 스님들의 정성스런 손길로 곱게도 피었다. 그후로 공원의 화단이나 남의 뜰에서만 만나다 내 뜰에도 들였다.

지난해 바다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 바닷바람 맞으며 홍자색의 꽃을 피운 자란을 보고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라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올해는 고흥 반도 끝자락에서 만났다.

조직배양을 통해 원예종을 재배되어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식물이다. 고운 색감을 전해주며 멋드러진 자태까지 겸비했으니 많은 이들의 눈도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 뜰에 들어온 두가지 색의 자란도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풍성하고 고운모습으로 꽃을 피워 아침 저녁으로 눈맞춤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경
강의
2
- 우응순 강의, 김영죽 정리, 북튜브

패풍·용풍·위풍

'시경 강의 1'을 읽으며 알듯 모를듯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 보니 내재된 분위기에 젖어들었나 보다.

汎彼柏舟 亦汎其流 범피백주 역범기류
耿耿不寐 如有隱憂 경경불매 여유은우
微我無酒 以敖以遊 미아무주 이오이유

두둥실 떠 있는 저 잣나무 배 물결 따라 떠 있구나
고통으로 잠 못 이루니 깊은 근심 있는 듯
술이 없어서 즐기며 놀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네

패풍 첫 시 '柏舟 백주'를 시작으로 다시 2권으로 만난다.

시경을 만나게 해주신 김영죽 선생님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