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살고 싶은 선비의 서툰 세상 나들이를 위로하는 것이 지는 매화이고, 아플 것을 지레짐작하며 미리 포기하고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 벚꽃이다. 있을때 다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뒷북치며 매달리다 스스로 부끄러워 붉어지는 것이 동백이고, 헤어짐의 불편한 속내를 위로 하는 것이 즈려밟는 진달래다. 소의 눈망울을 닮은 사내의 가슴에 닭똥같은 눈물방울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 지는 산벚꽃이고, 지극정성을 다한 후 처절하게 지고마는 것이 목련과 노각나무 꽃이다.

늘 다녀서 익숙한 계곡에 들던 어느날, 다 타버리고 남은 희나리 처럼 물위어 떠 있던 노각나무 꽃무덤을 발견했다.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먹먹함에 한동안 꼼짝도 못한 채 물끄러미 꽃무덤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가 올 봄에도 이어진다. 매화의 수줍은 낙화로 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는 살구나무에서 멈추었다가 벚꽃과 진달래, 철쭉으로 이어진다. 삼백예순날을 기다려 마주한 모란에서는 닷세동안 주춤거린다. 때죽나무와 쪽동백에서 다시 시작되어 여름철 노각나무에 이르러 큰 고개를 넘는다. 찬바람 불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꽃 지는 모습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몸과 마음을 하얗게 불사르고 난 후에도 순결한 속내를 고스란히 간직한 때죽나무와 쪽동백처럼 뒷 모습이 당당한 꽃을 가슴에 담는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꽃무덤 찾는 발걸음 마다 꽃의 정령이 깃들어 내 가슴에서 다시 꽃으로 필 것을 믿는다.

조용히 꽃무덤 앞에 두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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