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길에 언듯 보였던 무엇인가 있었다. 돌아서니 눈앞에 크게 요동치듯 움직이는 것이 있다. 댓잎 사이를 건너온 바람에 몸을 맡기니 그저 따라 움직일 뿐이다.

숨을 멈춘다. 내 움직임을 줄이고 집중해야 비로소 눈맞춤이 가능하다. 무엇이 가던 발걸음을 되돌리게 만들었을까.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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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희성 시인의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이다. 그리움의 완성은 제자리에서 제몫을 온전히 해내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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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黃槿
제주도를 특별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식물 중 하나다. 첫눈에 보고 반해 모종을 구했으나 추운 겨울을 건너다 깨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재주 좋은 벗이 씨앗을 발아시켜 나눔한 것을 소중히 키우고 있다. 꽃 볼 날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기만 하다.

깔끔하고 단정하며 포근하다. 이 첫 느낌에 반해 오랫동안 곁에 머물렀다. 연노랑의 색부터 꽃잎의 질감이 탄성을 불러온다. 바닷가 검은 돌로 둘러쌓여 아름답게 핀 모습이 꽃쟁이의 혼을 쏙 배놓았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Ⅱ급인 '황근'은 말 그대로 "노란 꽃이 피는 무궁화"다. 국화인 무궁화가 오래전에 들어온 식물이라면 황근은 토종 무궁화인 샘이다. 어딘지 모를 바닷가 검은 돌틈 사이에 제법 넓은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무궁화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저버리는 하루살이라 꽃이라고 한다. 미인박명의 아쉬움은 여기에도 해당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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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했다. 더디게더디게 시간을 쌓아 온 결과가 천년이니 비워내는 시간 또한 그만큼 더디기만 할 것이다.

구멍 뚫리고 상처난 몸으로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증거하는 일이 더이상의 상처가 아니길 바란다. 이는 생명을 가진 모든 이의 소망이리라.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이토록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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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나리
남쪽 야산에 하늘말나리가 지고 나면 가야산으로 향한다. 산정에나 피는 여름꽃을 보기 위해 들어선 계곡에는 숲으로 우거지고 볕은 키큰 나무들 사이로 겨우 들어오고 있다.
 
반그늘에서 잘 자라는 말나리가 드문드문 황적색의 얼굴을 내밀고 있다. 찾아간 발걸음이 늦은 때라 지는 중이지만 미모를 뽑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늘말나리와 비슷하여 곧잘 혼동하기도 하지만 윤생하는 잎의 갯수나 꽃의 모양과 피는 방향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남부지역에서 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가 못 본 것이리라.
 
가야산 정상에서 여름꽃들과 한참을 놀다 내려와 길이 끝나는 근처에서 탁족을 하고 일어서니 등 뒤에서 환한 웃는다. 내년에 다시 보자는 인사로 여기니 산행 끝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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