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난초
여름 제주 숲은 습기를 가득 품은 공기로 무겁기만 하다. 여기에 조금만 걸어도 달려드는 모기가 극성이다. 그것이 대수랴. 보고자 하는 꽃이 거기 있다는데 지체할 틈이 없다.
 
한번 와 본 곳이라고 익숙한 분위기의 숲에서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 거리다 보고싶은 것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조금 거리를 두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기다렸던 눈맞춤을 한다.
 
습도가 높고 반그늘 혹은 음지의 토양에 부엽질이 풍부한 곳에서 자란다는 흑난초가 주인공이다. 흑이라고 먹색은 아니다 자색이 약간 섞인 묘한색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신안군의 섬과 제주도 한라산에 드물게 분포하는 야생란으로, 멸종위기식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흑난초의 녹화라는데 이정도 차이면 다른 이름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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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시인 본색(本色)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정희성 시인의 시 "시인 본색(本色)"이다. 이 시를 처음 접한 마누라가 나를 처다보며 알듯모를듯 미소짓던 그 얼굴이 떠오른다. 사람 사는게 다 사는게 비슷하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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蟬說 선설
매미가 우는데 소리가 등에서 나온다. 무릇 천하에 소리를 내는 동물은 모두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 매미만 등에서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도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인가, 아니면 매미라는 물건이 미소해서 이목구비(耳目口鼻)의 기관을 갖추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벼룩과 이와 개미를 보면 지극히 자질구레한데도 입을 가지고 있고, 지렁이와 굼벵이를 보면 지극히 굼지럭거리는데도 입을 가지고 있다. 소리를 내지 않는 것들도 입을 가지고 있는데, 매미처럼 맑고 기이한 소리를 내는 것이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어찌 이상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옛사람이 “매미는 이슬을 마신다.”라고 하였으니, 매미에게도 입은 있는 것이다. 입이 없다면야 사람들이 물론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겠지만, 입이 있는데도 소리가 등에서 나와야만 사람들이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이 많은 것을 싫어해서 하늘이 매미의 입을 일부러 함봉(緘封)하여 경계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이렇게 써 보았다.
 
*조선사람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가 남긴 '매미에 대한 설'이다.
 
문득 돌아보니 어느날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때를 지나 제 몫을 다한 까닭이리라. 그 울음소리로 때가 되었음을 알았고 그 울음소리로 때가 무르익었음도 알았는데 그 울음소리가 사라지니 다른 때에 이르렀음도 알겠다. 이처럼 소리에 주목해 일상의 때를 구분하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될까. 羽化우화하여 한철을 제 멋으로 마음껏 보냈으니 모두가 登仙등선 하였길 빈다.
 
계절을 이끌어가는 비가 차분하게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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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엽란
지난 몇년 비슷한 때에 제주도를 간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때에 나는 식물들을 보게 되지만 드물게는 처음 본 식물들도 만나게 된다.
 
찻길에서 벗어나 샛길로 접어 들었다. 우거진 숲으로 어둡고 습기는 가득하여 무척이나 덥게 느껴지는 곳이다. 때를 지난 것이라 혹시나 늦둥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다른 것을 보면 된다는 느긋함이 있어 숲 나들이는 언제나 설렌다.
 
어쩌다 딱 하나 눈에 띄었다. 처음 만나는 것이니 신기할 따름이라 보고 또 보게 된다. 주변에는 꽃이 지고 난 후의 흔적이 수두룩하다. 제 때에 찾으면 장관이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잎이 없어 무엽란이라고 했단다. 부엽토가 쌓인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자란다. 줄기 '끝에 반 정도 벌어진 상태로 몇 송이씩 달리며 약간의 향이 있다'고 한다.
 
본 것으로 만족한다. 다시 기회가 있다면 꽃으로 제법 풍성했을 그곳의 숲에 때를 맞추어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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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꽃풀'
봤다고 꽃을 찾는 눈길에 여유로움이 있다. 그곳이 어디든 잘 자라서 꽃 피우고 다음 생을 이어갈 대책까지 마련하는 것을 보며 생명의 신비로움에 또다시 감탄한다. 가꾸는 손길에 정이 가득이다.
 
키큰나무들 우거진 계곡 옆 비탈면에서 가냘픈 꽃이 실바람에 흔들리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다. 초록의 그늘 아래 빛나는 하얀색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꽃이 피는 가지가 실처럼 가늘다. 이름을 짐작케하는 모습이다. 실마리꽃으로도 불린다. 작고 여려보이지만 곧은 줄기에서 전해지는 모습은 숲의 주인으로써의 당당함이 보인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여 보호를 하고 있다는데 가까이서 지켜본 이의 말에 의하면 의외로 강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라고 한다.
 
씨앗 발아된 개체를 분양 받아 온 실꽃풀이 한해를 넘기고 살아서 자리를 잡아간다. 꽃은 언제 필지 모르지만 늘 발걸음을 부르는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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