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족濯足'

壁絶巖危飛瀑落 벽절암위비폭락

灑珠噴雪 襟 쇄주분설천금거

緣何濯足窮深處 연하탁족궁심처

不濯他人己濯餘 불탁타인기탁여

깎아지른 벽 험한 바위에 폭포수 떨어지자

구슬 뿌리듯 눈을 뿜듯 옷자락을 적시네

무슨 까닭으로 깊은 곳에서 발을 씻는가

다른 사람 씻길 생각 말고 나부터 씻어야지

*지운영의 그림 "탁족"에 쓰인 시 한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 좀처럼 자신의 몸을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던 선비들이 버선을 벗었다. 이미 기분만으로도 자유를 누린듯 했을터이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그 시원함을 느꼈을 갓을 벗은 선비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초나라 시인 굴원의 ‘어부사’에 예화가 나온다. 나라 걱정하는 굴원에게 어부가 귀띔한다. “창랑의 물이 맑은가. 갓끈을 씻기에 좋겠구나. 창랑의 물이 흐린가. 발을 씻기에 좋겠구나.” 지운영은 거기에 한 수 더 얹는다. 남의 발까지 간섭하는 오지랖은 마땅치 않단다. 흐린 물을 만나면 내 발의 때부터 보자. 탁족은 ‘족욕(足浴)’이 아니다."

손철주의 해설이 그럴듯 하다.

고사의 의미는 세속을 떠난 은일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옭아메고 있었던 도덕과 규율에 닫힌듯 살았던 선비들이 더위를 쫒는다는 핑개삼아 그 엄격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중복中伏이다.

본격적인 더위 앞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때이다.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이 멀다면 거실에 찬물 떠놓고 발 담궈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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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래난초
깊은 땅 속에 침잠하더니 끝내 솟아 올라 간절함을 터트렸다. 그냥 터트리기엔 참았던 속내가 너무도 커 이렇게 꼬였나 보다. 하지만, 그 꼬인 모습으로 이름을 얻었으니 헛된 꼬임은 아니었으리라. 꼬이고 나서야 더 빛을 발하는 모양새 따라 널 마주하는 내 몸도 꼬여간다.

이 꽃을 보기 위해 연고도 없는 무덤가를 서성인다. 마음 속으로 무덤의 주인에게 두손 모으고 꽃를 보러 찾아왔으니 깊은 땅 속 꽃 많이 피어올리면 더러 나처럼 찾는 이 있어 반가움 있을거라고 넌지시 권한다.

전국의 산과 들의 잔디밭이나 논둑 등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는 짧고 약간 굵으며 줄기는 곧게 선다. 꽃의 배열된 모양이 실타래처럼 꼬여 있기 때문에 타래난초라고 부른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타래난초라고 한다.

하늘 높이 고개를 쑤욱 내미는 것이 옛날을 더듬는 듯도 보이고, 바람따라 흔들거리는 모양이 마치 깡총걸음을 들판을 걷는 아이 같기도 하다. 이로부터 '추억', '소녀'라는 꽃말을 가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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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緣'

굳이 말이 필요없다. 언어 이전에 이미 감지하고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영역이 여기에 속한다. 하여, 언어로 설명하기엔 부족하고 어설프다. "어찌 알았을까? 이 마음" 만으로도 충분하다.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마음 같은 것. 빛과 어둠이 서로를 의지하여 깊어지는 것. 사람도 자신의 마음에 세겨진 결에 의지하여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시간을 공들여 쌓아가야 가능하다.

이른 아침 볕이 사나워지기 전에 뜰을 걷는다. 잘려나간 단풍나무의 돋아난 새순에 아침햇살이 닿았다. 세상에 나와 숨을 쉬는 것을 축하라도 하듯 새순과 햇살의 만남이 눈부시다.

때마침 서로 서로가 어우러져 눈부심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만나 겹으로 깊어지는 일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여, 연緣은 연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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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꽃
모란 부럽지 않은 화려한 자태

紅芍藥 홍작약
嚴粧兩瞼醉照勻 엄장양검취조균
共導西施舊日身 공도서시구일신
笑破吳家猶不足 소파오가유뷰족
却來還欲惱何人 각래환욕뇌하인

홍작약
곱게 단장한 두 볼이 취한 듯 붉으니
다들 말하기를 서시의 옛 모습이라 하네.
웃음으로 오나라를 깨뜨린 것도 오히려 부족하여
문득 또 누구를 고뇌하도록 하려는가?
-이규보, '동국이상국전집' 권16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서른 번째로 등장하는 이규보(李奎報, 1168 ~ 1241)의 시 "紅芍藥 홍작약"이다.

작약은 중국이 원산지로 5~6월에 붉은색과 흰색 또는 다양한 색깔로 줄기 끝에 한 송이씩 핀다. 주로 약초나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꽃으로만 보면 모란과 비슷하나 모란은 나무고 작약은 풀이다.

옛사람들은 꽃의 아름다움과 약효에 모두 관심을 두었고 이를 다양한 시로 남겼다.

모란이 꽃잎을 떨구면 기다렸다는 듯 작약이 큰 꽃망울을 활짝 펼친다. 윤이나는 꽃잎이 색과 어우러져 더 화려하게 보인다. 이 모습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이다.

내게 작약은 초등학교 등하교 길에 보았던 무수히 많은 꽃을 피웠던 그 꽃밭으로 남아 있다. 그 기억이 내 뜰을 마련하고 고향집에서 가져온 구근으로 작약 화단을 만들게 되었다.

모란은 흰색으로 핀 단아함을 좋아한다면 작약은 검붉은 색으로 핀 농염함에 주목한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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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난초
삶의 터전을 옮기고 정신 없는 한해를 보내고 난 후 시작된 숲 탐방에서 딱 한개체를 만난 후 두해 동안 보지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라진 꽃을 마음에 담았다.

다른 식물의 상태가 궁금해 찾아간 곳에서 무리지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눈맞춤 했다.

주름진 녹색의 잎 사이에 황금빛색으로 빛나는 꽃을 달고 아래로부터 차례로 핀다. 백색의 입술모양 꽃부리의 안쪽에는 홍자색의 반점이 유독 눈을 사로잡는다. 녹색과 노랑 그리고 하얀색의 조합이 매력적이다.

닭의난초라는 이름은 꽃잎 모양이 닭의 부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난초류에 제비난초, 병아리난초 등과 같이 조류 이름이 붙어있는데 그 특징적인 모습을 식물어서 찾아 짝을 지어 이름 부르는 것이 흥미롭다.

초여름의 풀숲 사이에 녹색이나 하얀색이 피는 다른 난초들과는 달리 특별한 색감으로 피어 '숲속의 요정'이란 꽃말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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