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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 서연문답
김도환 지음 / 책세상 / 2012년 3월
평점 :
서연을 통해 조선후기의 풍경을 엿보다
조선왕조 오백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스물일곱 명의 왕과 더불어 각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선비들 또한 부지기수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관심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의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영, 정조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변한 세상에서 사람을 살리는 학문을 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소위 북학파나 실학자로 불리기도 한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조선의 역사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실학자들로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의 학문적 관심과 더불어 그들이 보여준 사람관계의 진수를 만나면서 현대에서 벌어지는 사람관계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북학파 또는 실학자의 좌장 역으로 홍대용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다.
바로 그 사람, 홍대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과학자, 수학자에서 천문학자 그리고 손꼽히는 거문고 연주자라는 단편적인 사실로 홍대용을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담헌집’,‘의산문답’이나 ‘건정동필담’, ‘계방일기’등으로 그의 저서를 접하기에는 일반인으로써는 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 홍대용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이며 더욱 정조가 왕위에 등극하기 전 왕세자 시절의 상황까지 알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김도환의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가 그 책이다. 이 책은 저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왕, 학자군주, 개혁군주로 일컬어지는 정조의 왕세자 시절 서연의 풍경을 담은 책이다. 경연이 왕의 공부라고 한다면 서연은 왕세자의 공부를 말한다. 이 서연에 홍대용이 계방의 시직으로 참여하며 그가 기록한 ‘계방일기’를 번역한 것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 김도환이 새로운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왕조국가에서 다음 왕으로 지명된 왕세자의 공부인 서연이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이뤄지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왕세자와 홍대용의 대화는 군신간의 예의를 기반으로 하되 자신이 갖는 학문적 지향점에서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모습을 보며 학문하는 사람의 올바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되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조의 왕위 등극 전의 역사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홍대용의 학문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를 북학의 문을 연 장본인으로 불리게 되는지 알 수 있다. 홍대용의 계방일기에 그려지는 사연의 모습은 방 안 풍경, 세손의 표정, 잡담 같은 소소한 일까지 모두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마치 서연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생동감이 함께한다.
노론의 맥을 잇는 정통 유학자이지만 북경을 방문하고 청나라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북학의 선두주자이자 실용학문을 철저히 추구했던 홍대용과 왕세자이지만 자신의 자리가 늘 위태로운 일상을 살며 왕과 신하들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던 정조의 시각이 결국에는 서로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이유가 된다. 어쩌면 정조의 왕위에 등극하며 정권에 참여하여 정책을 펼 수 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조선후기를 바라보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몹시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기록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크다. 이 책의 근거가 된 ‘계방일기’기 없었다면 정조의 왕세자 시절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특히 서연의 일원으로 참여한 개인의 기록이기에 그 의의는 더 크다고 보인다. 하지만, 이런 기록물 역시 현대인이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한자 문화권에 살면서도 이젠 잊혀져가는 한자로 기록된 문헌은 어느 외국어나 다름 없다. 하여 저자와 같은 학자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저자의 번역과 더불어 새롭게 구성한 이 책과 같은 다양한 저작물이 독자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