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비기나무
꽃이 기억되는 계기는 꽃마다 다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봤는가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대부분 혼자 보는 꽃이라서 때와 장소의 그날의 상황이 주를 이루지만 간혹 함께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특별한 경우가 있다.

1004 섬으로 유명한 신안군의 한 섬인 가란도를 걷다 처음으로 만났다. 모처럼 딸아이와 함께 걸으며 만났으니 당연히 딸과 함께했던 온통 그 시간으로 기억된다.

입술을 내밀듯 연보라색의 꽃이 독특하다. 가을로 가는 바닷가를 장식하고 있다. “열매를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 다음 베개에 넣어두면 두통에 효과가 있다” 것처럼 꽃도 꽃이지만 열매로 더 유용한 식물이라고 한다.

순비기나무라는 이름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내는 소리인 ‘숨비소리’, ‘숨비기 소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해녀들의 만성두통 치료제로 애용되었을 정도로 해녀들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나 보다.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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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의 벼슬 같은 맨드라미

醬甕東西增一格 장옹동서증일격
鳳仙紅白共繁華 봉선홍백공번화

장독대 이편 저편 운치를 더했거니
희고 붉은 봉선화와 함께 피어 있구나.

추사 김정희의 〈계관화〉 시 끝구다. 예전부터 봉선화와 함께 장독대나 울타리 밑에 심었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맨드라미는 그 꽃이 수탉의 벼슬과 같아서 한자로 계관화(鷄冠花)라고 쓴다. 똑같은 맨드라미라도 그 모양이 부채처럼 퍼진 것도 있고, 혹은 울타리처럼 넓적한 것도 있다. 또 혹은 덮여 늘어진 것도 있다. 그 이름이 제각기 다르고, 그 빛으로 말하더라도 아주 선연하게 붉은 것도 있고, 연분홍과 엷은 황색과 순백색도 있다. 혹은 한 송이에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다섯 가지 색깔이 뒤섞인 것도 있다.”

“맨드라미는 5,6월이 되면 그 줄기 끝에 닭의 벼슬 같은 꽃이 피어, 8,9월에 서리가 내릴 때까지 그대로 계속된다. 꽃이 고운 것보다도 피어있는 기간이 오래여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예전부터 이 꽃은 많이 재배했던 모양이다. 지금부터 7,8백 년 전에 고려의 시인 이규보가 자기 집 동산에 활짝 핀 맨드라미를 사랑해서 장편의 시로 노래한 것만 보더라도 이런 사정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꽃을 사랑하고 시를 좋아했던” 고려사람 이규보의 시다.

鷄已化花艶 계이화화염
云何在溷中 운하재혼중
尙餘前習在 상여전습재
有意啄蛆虫 유의탁저훼

닭이 이미 꽃으로 변화하여서
어이해 뒷간 가운데 있나.
아직도 옛 버릇 그대로 남아
구더기 쪼아먹을 생각있는 듯.

사진은 내가 사는 동네 입구, 수로 가에 있는 맨드라미다. 매년 탐스럽게 자라나 붉디붉은 꽃을 큼지막하게 피운다. 출 퇴근 길에 눈맞춤하며 대부분 차로 지나치지만 매년 한번씩은 차를 세우고 다가가 인사를 나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마음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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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조팝나무
선자령이라고 했던가 차를 세우고 길 아래로 내려간다. 첫눈맟춤 하는 제비동자꽃, 익숙한 애기앉은부채와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길로 오르는 눈길과 딱 마추쳤다.

옳지 너지? 역시 사진으로 익혀두고 언제보나 싶었던 꼬리조팝나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준다. 분홍색의 꽃봉우리가 바람이 흔들리며 나 여기있다고 신호를 보낸다. 번지는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코밑까지 가서 찐한 눈맞춤을 한다.

무슨 동물의 꼬리를 닮아서일까? 다른 조팝나무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다른 꽃모양과 꽃 색깔이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 분포한다지만 남쪽에서는 보지 못했다.

바쁜 일정에 뒤돌아오면서도 자꾸 멈칫거리는 이유는 첫눈맞춤한 꽃들과 작별이 쉽지 않아서 일 것이다. 여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발걸음을 붙잡는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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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꽃
꽃을 볼 때마다 정채봉의 오세암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스님과 동자 그리고 암자라는 소재가 주는 동일성이 결말이 다른 이야기와 겹쳐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황색 꽃이 줄기 끝과 잎 사이에서 핀다. 다섯장의 꽃잎이 가운데가 갈라져 심장 모양으로 보인다. 어린아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연상해 본다.

동자꽃이라는 이름은 먹을 것을 구하러간 스님을 기다리다 얼어죽은 동자를 묻은 곳에서 피어났다는 전설로 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종류로는 동자꽃, 털동자꽃, 제비동자꽃, 가는동자꽃 등 4종이 있고 한다.

'동자꽃'
배고파 기다리는 것이나
그리워서 기다리는 것이나
모두 빈 항아리겠지요
그런 항아리로
마을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올라앉아보는구려
바위 위에는 노을이라도 머물러야 빈 곳이 넘칠 수 있나니
나도 바위 곁에 홍안의 아이나 데리고 앉아 있으면
내 그리움도 채워질 수 있을까요
목탁 소리 목탁 소리 목탁 소리
어디선가 빈 곳을 깨웠다 재웠다 하는
무덤 토닥이며 그윽해지는 소리
*김영남 시인의 동자꽃이란 시다. 동자꽃에 어린 애틋한 마음이 구구절절 담겼다.

전설을 통해서라도 담아두고 싶었던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기다림', '나의 진정을 받아 주세요'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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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풀
이때 쯤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음을 아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꽃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다보니 무턱대고 찾아가 헤매다 결국 보지 못하던 때를 지나고 이젠 내 나름의 꽃지도를 만들었으니 헛탕치는 일은 많지 않다. 여전히 미 완성된 꽃지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촘촘해져 간다.

여러 '그곳' 중에 하나인 곳에 가면 볼 수 있다. 그곳의 주 대상은 노랑물봉선이지만 그보다 앞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대상이다.

연노랑의 꽃이 다닥다닥 붙어서 피었다. 다섯장의 꽃잎을 활짝 펼치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바짝 붙었지만 아랑곳 않고 핀다. 줄기 끝에 모여 피어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유리한 모습이다. 이런 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좁쌀풀은 노란색의 작은 꽃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좁쌀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좁쌀에 비교하지만 그것보다는 크다.

올해는 강원도 어느 길을 가다 지나친 꽃을 보고자 차를 세웠다. 길가에 무리지어 핀 꽃이 부지기수다. '잠든 별', '동심'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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