節肖此君高 절초차군고
花開兒女艶 화개아여염
瓢零不耐秋 표령불내추
절개는 대나무의 높음 닮았고
꽃 피면 아녀자의 고움이 있네.
흩날려 가을철도 못 견디노니
대나무 되기엔 외람되도다.
*고려 사람 이규보의 시〈석죽화〉다. 이규보는 “고금을 통털어 모란시를 가장 많이 지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마음이 성에 차지 않아, 샅샅이 찾아가며 온갖 꽃을 다 읊고, 마침내 석죽화에까지 그 날카로운 시의 붓을 향하였다.”
석죽화의 속명이 패랭이꽃이다. 초립동이가 쓰는 모자인 ‘패랭이’와 비슷해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석죽화는 바위틈이나 산중의 건조한 곳에 자생하는 평범한 꽃이다. 하지만 그윽한 운치가 있고, 심으면 잘 나고, 옮겨 심어도 잘 살기 때문에 원예가들이 즐겨 재배한다.” 다산 정약용은 “우리나라의 석죽화는 다만 붉은 색 뿐이지만, 중국산은 5색의 꽃이 다 있다”고 했다.
世愛牧丹紅 栽培滿院中 세애목단홍 재배만원중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수지황초야 역유호화총
色透村塘月 香傳隴樹風 색투촌당월 향전롱수풍
地偏公子少 嬌態屬田翁 지편공자소 교태속전옹
세상사람 모란 붉음 사랑하여서
동산에 하나 가득 기르는구나.
뉘 알리 황량한 들판 위에도
또한 좋은 꽃떨기 숨어 있음을.
빛깔은 방죽 달빛 스미어들고
향기는 언덕 나무 바람에 오네.
땅이 후져 공자님 찾지 않으니
교태를 농부에게 맡기는구나.
고려 때 시인 정습명(鄭襲明)의 시〈영석죽(咏石竹)〉이다. “석죽화가 아리따운 자태는 여름철에 사랑을 받는 봉선화만 못하고, 그윽한 운치는 겨울철에 맑게 피는 수선화에 미치지 못한다. 곱기로는 저 모란꽃의 발치에도 서지 못하고, 가녀린 것은 양귀비꽃을 바라보지도 못할 것이다. 또 순결한 자태는 숲 아래에서 고개를 숙이고 하얗게 피어 있는 백합에 비해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하겠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정습명은 굳이 이런 평범한 꽃을 즐겨 예찬하였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푸더분한 아내가 비록 자색이 빼어나지는 않아도 오히려 가정의 사랑과 기쁨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로, 석죽화는 시골 사람에게 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매년 낮은 산과 들에 봄꽃이 지고나면 지리산 노고단에 오른다. 높은 산에 피는 꽃을 보기 위함이다. 여기쯤 무슨 꽃이 피었는데 라며 두리번거리는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그곳 중 하나에 이 꽃이 핀다. 그것도 꽃잎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술패랭이꽃이다. 바람이 많은 곳에서 바람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좋아서 매번 놓치지 않고 눈맞춤 한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