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난초
여리디여린 것이 어쩌자고 척박한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을까. 바위 위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듯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홍자색 꽃이 꽃대 끝에 모여서 핀다. 간혹 하얀색의 꽃이 피는 것도 만날 수 있다. 꽃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달린다. 길고 날씬한 잎 하나에 꽃대가 하나씩으로 올라와 꽃을 피운다. 하나하나의 모습이 단촐한 것에 비해 무리진 모습은 풍성해 보이는 꽃에 더 눈길이 간다.

생긴 모양과 어울리는 이름을 가졌다. 작고 앙증맞아서 병아리난초라고 한다. 병아리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로는 병아리풀과 병아리다리가 있고 병아리다리는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다.

자생하는 곳의 조건과 작아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아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식물이다. 한번 눈에 들어오면 의외로 사람사는 곳 가까이 있는 것도 확인이 된다.

매년 보는 곳을 찿았다. 조금 늦어서 꽃이 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때를 맞춰 꽃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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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보고자 연못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꼼꼼하게 수를 놓은듯 채워진 바탕에 연잎 하나 펼쳤다. 묘한 어울림으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틈을 내었다. 잇대어 있는 사이의 틈은 스스로 숨구멍이며 더불어 사는 생명의 근본이다. 틈은 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주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사람의 관계도 다르지 않아 이 틈이 있어야 비로소 공존이 가능하다. 물리적ㆍ심리적인 시ㆍ공간의 틈이 있었기에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다.

비와 비 사이,

빼꼼히 나올 볕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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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등불버섯

키큰나무들로 숲은 이미 그늘에 들었다. 나도제비란을 보기 위해 들어간 숲에서 보았던 이 노랑빛을 내는 이상한 녀석을 만나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데 지난해 그곳과는 다른 곳에서 만났다.

줄기와 머리가 확연이 구분된 모습에 노랑색이 눈을 사로잡는다. 길어봤자 손가락 크기만 한 것들이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치 콩나물이 자라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검색으로 같은 모습의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고 이름을 '습지등불버섯'이라고 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DB에도 검색되지 않는다. 습지에서 자라고 등불을 켜놓은 모습이 연상되기에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처음 본, 더구나 알지 못하는 대상의 이름이라도 알아보려고 이곳저곳을 기웃대는 동안 신비로운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이다. 숲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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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이 다음생으로 건너가는 중이다. 꽃은 피고지는 매 순간을 자신만의 색과 향기로 온몸에 생채기를 남겨 기록함으로써 다음생을 기약하는 자양분으로 삼는다.

핀 꽃이 떨어져 다시 피었다가 땅으로 스며드는 것을 무심한듯 끝까지 지켜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情이 든다는 것도 상대방의 그림자에 들어 나 있음을 억지로 드러내지 않는 것과 서로 다르지 않다.

하여, 정情이 들었다는 것은 각자 생을 건너온 향기가 서로에게 번져 둘만의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아는 일이다.

정情이 든다는 것,

스며든 향기에 은근하게 잠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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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

제왕으로 군림하는 독보적 꽂

詠牧丹 영목단

風流富貴百花尊 풍류부귀백화존

國色天香到十分 국색천향도십분

如何箇樣花開大 여하개양화개대

不及區區芥子孫 불급구구개자손

목단을 읊다

풍류와 부귀는 온갖 꽃 중에서 높고

국색과 천향은 온전함에 이르렀네.

어이하여 그토록 꽃이 크게 피면서도

보잘것없는 겨자의 자손만큼도 번성치 못하는가?

-서거정, '사가시집' 권31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스물여덟 번째로 등장하는 서거정(徐居正, 1420 ~ 1488)의 시 "詠牧丹 영목단"이다.

모란은 중국이 원산지로 5월에 붉은색의 꽃이 피는 나무다. 비슷한 꽃이 여러가지 색으로 피는 작약은 풀이다.

모란이라 하면 우선 신라의 선덕여왕의 설화에 등장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당태종이 모란 그림과 함께 씨앗을 보내왔는데 덕만공주가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듬해 핀 모란은 향기가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그렇게 이야기 한 이유는 그림 속에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모란에는 향기가 없을까? 무수한 벌들이 날아들어 꽃속에 묻힐듯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란은 진한 향기를 풍긴다.

모란은 대체로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풍성한 꽃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양반집 뜰에는 반드시 모란을 가꾸었던 것과 수많은 문학작품과 그림에 등장하는 것이 반증이리라.

내게 모란은 어린시절 외갓집 장독대 옆에서 붉게 피던 그 모란으로 기억된다. 학창시절에는 김영랑의 모란으로 옮겨왔고 내 뜰을 가진 지금엔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 겨우 닷새 보고 마는 애뜻함으로 남았다.

붉은색으로 피는 모란이 주는 화려함 보다는 흰색으로 피는 모란의 단아함에 더 빠져 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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