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꽃

밤마다 끌어안는 부부의 정

奩體 염체

重重繡幕遮 중중수막차

簷角燕雙斜 첨각연쌍사

最羨階前樹 최선계전수

能開夜合花 능개야합화

겹겹이 비단 장막 쳐져 있고

처마에는 제비가 쌍으로 날아드네.

가장 부러워하노라, 섬돌 앞 나무에

야합화가 잘 피어날 수 있음을.

-이수광, 지봉집 권1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사십 일번째로 등장하는 이수광(1563~1628)의 시 "奩體 염체"다.

자귀나무는 콩과식물로 낙엽지는 나무다. 자귀대의 손잡이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나무였기 때문에 자귀나무라고 하였으며 지역에 따라 소가 잘 먹는다고 소쌀밥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귀나무는 밤이면 잎이 오므라들어 합해지는다는 것을 보며 합한수 또는 합한목으로 불렀다. 자귀나무의 짝을 이룬 잎들의 결합이 곧 남녀의 사랑의 성취를 상징하는 의미를 부여 했다. 여기에 주목하여 창가에 심어두면 부부의 금실이 좋아진다며 심었다고 한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저법 큰 자귀나무가 있었다. 나름 수형을 갖춘 나무는 여름이면 부챗살처럼 펼쳐놓은 분홍색 꽃을 가득 피웠다. 꽃은 아름다우나 꽃술에서 떨어지는 끈적이는 액체로 인해 바닥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싫어 뜰에 들이지 않았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금꿩의다리
훌쩍 키를 키웠으면서도 산발적이지 않다. 작은 꽃들이 가지마다 옹기종기 모여 더 큰 꽃으로 피었다.꿩의다리들 중에 가장 화려한 치장을 한 금꿩의다리다.

꽃 닮은 이가 나눠준 내 뜰의 금꿩의다리가 몇 년 만에 제대로 꽃을 피웠다. 독특한 매력으로 주목 받기에 충분하다. 연보라색의 꽃잎과 노란 꽃술의 어우러짐이 환상이다.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꿩의다리는 줄기가 마치 꿩의 다리처럼 길기 때문이고 금꿩의다리는 수술 부분의 노란색 때문에 꽃에 금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여 금꿩의다리라고 한다.

야생에선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 대관령 길가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마침 흰색으로 피는 꽃까지 볼 수 있었다. 사진은 메모리카드의 문제로 마음 속에만 꼭꼭 넣어두었다.

다른 꿩의다리들에 비해 키가 크다. 여기에서 꽃말인 '키다리 인형'이 유래된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읽는수요일

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박재삼 시인의 시 '천년의 바람'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를테면 공갈빵 같은 거
속을 보여주고 싶은데
알맹이 없는 껍질뿐이네
헛다리짚고 헛물켜고
열차 속에서 잠깐 사귄 애인 같은 거
속마음 알 수 없으니
진짜 같은 가짜 마음만 흔들어주었네"

*이임숙의 '헛꽃'이라는 시의 일부다. 열매 맺지 못하는 꽃을 헛꽃이라 부르는 이유야 분명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어디 참꽃만 있던가. 화려하게 유혹하는 이 헛꽃의 무상함을 알면서도 기대고, 짐짓 모른척하면서도 기대어 그렇게 묻어가는 것들이 삶에서 오히려 빈번하다.

헛꽃은 바라보는 대상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게도 있다. 이런 헛꽃들이 만나 헛세상을 만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헛꽃이고 헛세상인줄 모른다. 그래서 헛마음으로 사는 헛세상은 늘 힘들고 외롭고 제 힘으로 건너기 버거운 세상이 된다.

헛꽃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서툴고 여린 속내를 어쩌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만이 참이라 여기는 그 마음에 피어나는 것이 헛꽃이리라. 헛꽃들이 허상을 보고 아우성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헛물켜는 것들은 목소리만 높다.

반영이나 그림자 또한 헛꽃의 다른 이름이다. 실체가 있고 그것을 비춰줄 환경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때론 실체보다 더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조건만 사라지면 덩달아 없어지는 허망한 것임을 모른다.

"헛꽃만 피고 지는 이 자리
헛되고 헛되니 헛될 수 없어서 헛되도다"

혹여, 내 일상의 몸짓이 이 헛꽃보다 못한 허망한 것은 아닐까. 시인이 경고한 헛꽃의 그 자리를 돌아보는 것은 연일 폭염보다 더한 사람의 허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침, 비 쏟아졌다 그친 하늘 아래 한결 가벼워진 공기다.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으로 얼굴은 이내 평화로운 미소를 담는다. 멀지 않은 곳에 가을이 머물러 있음을 알기 때문이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네발란
가까이 두고도 보지 못하는 꽃들이 있다. 이유야 많겠지만 때가 아닌 것으로 여기면 그나마 아쉬움이 덜하다. 이 식물 역시 그랬다. 피었다는 소식이 올라와도 딱히 가볼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제는 동행하는 벗이 있기에 매해 볼 수 있었다.

연분홍 꽃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마치 하늘의 별들을 보는 것만 같다. 한참을 올려다보며 눈에 익히고서야 하나씩 눈맞춤 한다. 하나씩 피던 집단으로 모여 피던 환상적인 모습이다.

열악한 환경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시각이고 그 식물에겐 최적의 환경일 것이다. 바위에 붙어 생을 어어가는 그 절박함은 한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줄기에 잎이 붙은 모습이 기어가는 지네를 닮아서 지네발난이라고 한다. 멸종위기식물로 분류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올해는 지난해와는 달리 풍성하게 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소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 함께한 벗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누려도 좋지만 함께 나누면 더 좋은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