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공갈빵 같은 거
속을 보여주고 싶은데
알맹이 없는 껍질뿐이네
헛다리짚고 헛물켜고
열차 속에서 잠깐 사귄 애인 같은 거
속마음 알 수 없으니
진짜 같은 가짜 마음만 흔들어주었네"

*이임숙의 '헛꽃'이라는 시의 일부다. 열매 맺지 못하는 꽃을 헛꽃이라 부르는 이유야 분명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어디 참꽃만 있던가. 화려하게 유혹하는 이 헛꽃의 무상함을 알면서도 기대고, 짐짓 모른척하면서도 기대어 그렇게 묻어가는 것들이 삶에서 오히려 빈번하다.

헛꽃은 바라보는 대상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내게도 있다. 이런 헛꽃들이 만나 헛세상을 만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헛꽃이고 헛세상인줄 모른다. 그래서 헛마음으로 사는 헛세상은 늘 힘들고 외롭고 제 힘으로 건너기 버거운 세상이 된다.

헛꽃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서툴고 여린 속내를 어쩌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만이 참이라 여기는 그 마음에 피어나는 것이 헛꽃이리라. 헛꽃들이 허상을 보고 아우성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헛물켜는 것들은 목소리만 높다.

반영이나 그림자 또한 헛꽃의 다른 이름이다. 실체가 있고 그것을 비춰줄 환경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때론 실체보다 더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조건만 사라지면 덩달아 없어지는 허망한 것임을 모른다.

"헛꽃만 피고 지는 이 자리
헛되고 헛되니 헛될 수 없어서 헛되도다"

혹여, 내 일상의 몸짓이 이 헛꽃보다 못한 허망한 것은 아닐까. 시인이 경고한 헛꽃의 그 자리를 돌아보는 것은 연일 폭염보다 더한 사람의 허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침, 비 쏟아졌다 그친 하늘 아래 한결 가벼워진 공기다.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으로 얼굴은 이내 평화로운 미소를 담는다. 멀지 않은 곳에 가을이 머물러 있음을 알기 때문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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