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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나면서부터 꽃 피워 절정으로 살다 질 때까지 수고로움이 담겼기에 꽃 지고 말라버린 후 불에 타면서도 향기와 함께 한다.

다양한 종류의 국화와 구절초, 작약, 꽃범의꼬리 등 꽃이 지고 난 흔적을 정리하고 텃밭에서 태우고 다시 생명을 키울 땅으로 돌려보낸다. 게으른 이가 조그마한 뜰을 가꾸며 한 해를 마무리해가는 일 중 하나다.

지고난 꽃 태우니 꽃향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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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일'
부드럽다. 막 피어나는 꽃처럼 은근함이 베어난다. 무심하게 바라보는 표정이 애써 마음낸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듯 천진난만이다. 허나, 가슴에 박아둔 커다란 멍애는 무엇이란 말이냐.

대상에서 형상을 불러내 눈앞에 세우는 것, 이것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자리가 드러나는 일이며, 자르고 깎고 다듬는 손길이 시간을 겹으로 쌓아온 나무의 그것과 눈맞춤하는 일이다.

돌을 앞에 둔 석공은 돌 속에 감춰진 마음을 깨워 형상으로 나타낸다고들 한다. 나무를 만지는 목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될법한 말인가. 다 제 마음 속 간절함을 돌이나 나무에 투영시켜 형상으로 다듬어 내는 것이지.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 속 간절함을 상대에게서 찾고, 그렇게 찾은 그것을 깨워 함께 나누며 더 밝게 빛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사람 관계의 근본일 것이다. 

저절로 피어나는 미소는 억지스러움을 넘어선 마음자리의 자연스러움이다. 간절함을 담아 나무를 다루었을 거친 손길과 서툰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화가는 그림으로 작가는 글로 음악가는 곡과 연주로 자신의 본래 마음자리와 만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마주할 것인가. 어슴푸레 나무조각의 번지는 미소를 통해 짐작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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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궁기'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꽃을 볼 수 없는 겨울철 꽃을 보고 싶은 마음의 한 표현이리라. 여전히 습관적으로 꽃을 찾던 버릇이 남아 어디를 가던지 두리번 거린다. 

휴대폰 갤러리 사진을 뒤적이고, 식물사전을 보며 눈공부도 하며, 햇살드는 언덕을 찾아가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은 꽃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길이 없다. 하여, 꽃궁기에 허덕이는 이들끼리 그 마음을 다독이며 서로를 위로한다.

꽃이 없으니 꽃진자리를 서성인다. 열매를 보고 수피를 만지고 봄을 준비하는 꽃눈에 눈맞춤 한다. 그 사이 계절이 수상하여 서리꽃이나 눈꽃도 만나기 힘든 시기를 건너는 길을 묻는다.

눈길을 헤치고 탐매探梅의 길을 나선 옛 사람들의 마음을 알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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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그 포근함이 전하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봄내음을 탐하게 되는 것이 눈쌓인 하얀 동짓날 밤을 기대하는 마음과 어긋나서 비가 내리는 것일까. 

무게를 덜어버린 구름이 산을 넘는 폼이 아장아장 걷는 봄병아리 그것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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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아잠還我箴'

"옛날의 나, 맨 처음엔 본연 그대로 순수했지. 지각이 생기면서 해치는 것들 마구 일어났네. 지식이 해로움이 되고 재능도 해로움이 되었다네. 마음과 일이 관습에 젖어들자 갈수록 벗어날 길이 없었네. 성공한 사람들을 아무 어른, 아무 공公 하면서 극진히 떠받들며, 그들을 이용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네. 본래의 나를 잃어버리자 진실한 나도 숨어버렸네. 일 꾸미기 즐기는 자들, 돌아가지 않는 나를 노렸지. 오래 떠나 돌아갈 마음 생기니 해가 뜨자 잠에서 깨어나는 듯, 몸 한번 휙 돌이키니 이미 집에 돌아왔네. 주변 모습은 달라진 것 없지만 몸의 기운은 맑고 편안하다네. 차꼬 풀고 형틀에서 풀려나 오늘에야 새로 태어난 듯. 눈도 더 밝아진 게 아니고 귀도 더 밝아지지 않았으니, 다만 하늘이 준 눈과 귀의 밝음, 처음과 같아졌을 뿐이네. 수많은 성인은 지나가는 그림자, 나는 나로 돌아가길 원할 뿐. 갓난아이나 어른은 그 마음 본래 하나라네. 분향하고 머리 숙여 천지신명께 맹세하노니 이 한 몸 마치도록 나는 나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리."


*이용휴(李用休, 1708~1782)의 환아잠還我箴이다. 
신의측(申矣測)이란 제자가 '참된 나를 찾는 방법'을 묻자 그를 위해 지어준 글이 이 환아잠이다. 환아還我는 나로 돌아가자는 뜻이니 자신의 본래 마음자리에 비추어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이용휴는 '나'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는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을 믿고 살아가리라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 밑바탕은 바로 이 환아還我에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씨앗이 조건의 호불호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스스로에게 내재된 힘을 믿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믿음이 싹을 틔웠고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게 한 것이다. 이제 다시금 새로운 터전에서 새 삶을 꿈꾸는 씨앗에서 나도 내일의 희망을 본다. 온전히 자신을 믿을 때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리라.


볕이 좋은 겨울날 스스로에게 묻는다. 환아還我, 나를 있게 한 본래 그 자리는 어디이고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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