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간서치를 넘어 문장가이자 실학자로
조선의 역사에서 18세기는‘위대한 백년’이라 일컬어지는 시기다. 이는 영조와 정조의 치세에 해당되는 기간으로 조선 후기의 시대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로 여겨진다. 성리학의 틀에 갇혀있던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변혁을 시도했던 시기로 이 ‘위대한 백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로 북학파의 실학자들이 중심에 있다고 본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 일련의 북학파 실학자들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반면 이덕무는 ‘책만 읽는 바보(간서치)’로 한정된 측면에서만 알려진 경향이 크다. 이덕무는 책에 대한 지독한 벽을 지닌 탐서가의 면모 말고도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수많은 글을 남긴 조선의 대표 지식인이다. 이러한 면모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아 무척이나 아쉬움이 큰 사람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조선 후기 영조 정조 때 활약한 문장가이자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로 호는 청장관, 형암, 아정, 간서치 외 다수가 있으며,규장각 검서관을 지냈다. 유고집으로 ‘아정유고’가 전집으로 ‘청장관전서’가 있다.
역사 평론가 겸 고전 연구가인 한정주는 바로 이덕무를 바라보는 이런 한계를 넘어선 다양한 측면에서 그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책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저자 한정주가 이덕무가 남긴 시와 산문, 문예비평, 백과사전적 연구서 등을 크게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며 여덟 가지 테마로 재구성해 이덕무의 삶과 철학을 광범위한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덕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은 ‘치열하게 읽고 기록하다’와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이 그것이다. 먼저 ‘치열하게 읽고 기록하다’는 이덕무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삶과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정신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서얼출신의 가난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 닦았던 독서가, 문장가,비평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에서는 조선의 풍속과 문화에 대한 지적 탐구의 여정과 애정 어린 시선을 담은 민속학자이자 박물학자, 북학 사상가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북학파 실학자의 일원으로 백탑파의 중심적인 인물로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동시에 같은 흐름선상에서 활동했던 ‘의산문답’의 홍대용, ‘열하일기’의 박지원, ‘북학의’의 박제가, ‘발해고’의 유득공과 달리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현실에서 이덕무의 평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의 발간이 가지는 의미는 사뭇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이덕무를 중심으로 18세기 조선 역사의 한 흐름을 형성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문장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서이수 등과 주고받았던 척독이나 편지, 문장을 통해 그들이 추구했던 내면세계도 함께 살펴봄으로써 위대한 백년’이라는 18세기 조선의 지성사의 면면을 살필 수 있게 한다. 한 자리에서 조선의 명문장들을 만나는 흔치않은 기회다.
“청장(靑莊)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이 새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먹이를 뒤쫓지 않고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 쪼아 먹는다. 그래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한다. 이덕무가 청장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글은 박지원이 남긴 형암행장의 일부다. 이덕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가장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다. 사람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과정에서 추구했던 정신과 그가 남긴 흔적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또한 그를 둘러싼 시대적 환경과 교류했던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사회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청장관 이덕무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