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에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 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을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개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엇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사랑이 가득담긴 시다. 불명산 깊은 계곡 중턱에 자리잡아 세간의 주목을 덜 받고 있을때 안도현 시인의 이 시가 화암사와 세상 사이 다리를 놓은 셈이다.


화암사는 내게 이른 봄에 피는 얼레지다. 극락전(국보 316호), 우화루(보물 662호) 보다 꽃이 귀한 이른봄 얼레지로 먼저 알게된 절이다. 정작 얼레지 피는 봄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여름 끝자락에 그 화암사를 찾아간다.


숲길이 좋다. 사람의 손때를 덜탄듯 다소 거친 돌길이 절다운 절에 드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이든 다 품어줄듯 하면서도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해야 하는 구도자의 삶처럼 녹녹치 않은 길이어서 더 좋다. 돌 몇개만 고르면 좋은 길에 쇠와 방부목으로 나무길을 내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우화루(雨花樓), 보물 662호로 경사면에 석축을 쌓고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마루를 내어 안마당을 더 넓게 보이도록 하고 대중이 모일 강당을 만들었다. '꽃비 내리는 누각'이라는 이름도 건축만큼 아름답다.


극락전(極樂殿), 국보 316호로 정면 3칸, 측면 3칸인 극락전은 다포양식의 맞배집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국 목조건축의 전형인 하앙식(下昻式)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두 건축물 보다 속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좁은 터에 건물들이 어께를 걸고 있지만 욕심 부리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다. 거의 모든 절이 자본의 위력을 과시하느라 혈안이된 듯 보이는 이 시대에 그것과는 비켜선듯 참으로 단아한 절 맛을 지녔다.


안도현 시인이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말한 이유를 짐작하는 사이 얼굴에 미소가 절로 난다.


건물과 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늘공간이 좋아 오랫동안 처마끝에 시선이 머문다. 낙엽지는 때를 골라 다시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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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랑 2016-08-24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진 님 올려주신 글 덕에 시인의 글을 찾아보고, 잘~ 늙은 산사를 눈에 새기고 갑니다.

낡음을 고스란히 내보여서 오히려 좋네요.
단청으로 어색한 꽃단장을 해놓고 홀로 화려하게 버티고 있는 산사는 거부감이 생기는데, 불명산 화암사 그 정겨움을 찾아 꼭 가봐야겠어요.

오늘도 좋은 시간되세요 ^^

무진無盡 2016-08-24 12:11   좋아요 1 | URL
좋은 만남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