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평점 :
현문현답, 과거에서 오늘을 만나다
우선 종교에 연연하지 않고 두 어른의 이야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삶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이기에 그 삶에 담긴 지혜를 엿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대가 안고 있는 물음이나 개인적인 관심사에 혹 힌트라도 얻을 수 있길 기대한다.
우선 성철 스님은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혹독한 고행과 엄격한 자기 수행, 그리고 어떠한 지위와 권력 앞에서도 초지일관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던 원칙주의자의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에 반해 법정 스님은 글을 주요한 매개로 대중과의 소통하며 “온후하면서도 강직한 수도자의 자세와 품위를 잃지 않은 삶과 글”로 친숙한 이미지로 알려진 스님이다.
한국 현대 불교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두 어른인 성철과 법정은 세속의 나이차이 만큼이나 불교 내에서도 어른과 후배 종교인으로 인연은 깊었다고 한다. 법정은 성철을 불가의 큰 어른으로 따랐고, 성철은 뭇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하면서도 유독 제자뻘인 법정을 인정하고 아꼈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의 과정에서 성철과 법정의 대화를 ‘첫 번째 이야기 : 我, 자기를 바로 보라, 두 번째 이야기 :俗, 처처에 부처이고 처처가 법당이네, 세 번째 이야기 : 佛, 네가 선 자리가 바로 부처님 계신 자리’의 세 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엮은 책이 설전이다. 두 거인들의 대화를 통해 불교의 중심적 관심사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책 제목 설전雪戰은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하는 한편,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성철의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강직함을 법정의 부드러움으로 이끌어내어 종교적 현안들을 대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평이한 수준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두 거인이 대중들에게 내놓고 있는 따스한 마음자리로 보인다. 여기에 이 대담집의 제목을 설전으로 부여한 까닭이 드러나고 있다.
시종일관 성철 스님의 어른스러운 타이름과 대중을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을 보여주는 법정의 질문이 종교로써 불교에 대한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보인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온전한 마음자리에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라는 따스함이 함께한다. 원택 스님의 증언을 통해 성철과 법정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과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담긴 내밀한 의미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거장들의 여유가 가져다주는 따스하고 넉넉한 마음이 돋보이는 기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