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 - 하 - 왕을 기록하는 여인
박준수 지음, 홍성덕 사진 / 청년정신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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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는?

왕조의 역사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조선왕조실록의 기록물로써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이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사람을 우리는 사관으로 기억하며 그들에게 주어졌던 역할과 의무를 함께 기억한다.

 

사관은 조선시대 실록 편찬을 담당한 춘추관의 예문관 소속으로 사관 8(봉교 2대교 2검열 4)은 역사 기록에 관련된 직무만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사람들이다한림翰林이라고도 하였다.”비교적 낮은 직위의 신분이었지만 항상 임금 곁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왕도 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존재들이었다매우 엄격한 선발기준에 의해 임명되었고 그 신분을 보장받았으며 정부의 중요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에서 사관제도를 두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사관 제도는 정확한 직필直筆로써 국가적인 사건임금의 언행관리들의 공과그 시대의 사회상 등을 기록하여 후세에 정치를 하는 데 거울로 삼게 하려는 것이었다그렇기에 사관의 기록인 사초는 사관 이외에는 왕을 포함해 누구도 볼 수 없었다.

 

박준수의 왕을 기록하는 여인사관은 바로 이 사초에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 작품이다계유정난의 주인공들인 수양과 공신들을 한 축으로 하고 이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던 한 축이 그 사건의 역사적 기록에 대한 사명을 가지면서 갈등하는 이야기다수양이 죽고 난 후 성왕이 실록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두고 왕과 갈등을 겪는 사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이 이야기 흐름에 덤으로 여자 사관을 등장시켜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여자 사관의 필요성을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자고로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하는 신하들은 두 부류가 있다고 전재하며 한 부류는 사관으로 자신들이 직접 알 수 없는 궁궐의 깊은 곳에 대한 관심이며 다른 부류로는 권신으로 자신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왕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이 전재가 여자 사관을 상정하게 하는 근거다.

 

사관이 기록한 사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관의 역할이다그래서 사관의 기록물인 사초는 시비를 가리지수정도 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으며사관이 권력의 눈치를 살펴 스스로 검열하지 않도록 일종의 면책권까지 주었다그만큼 역사의 기록을 사실에 근거해서 후세에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어차피 역사란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들이 쓰지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후인들이라네후인들은 그리 어리석지 않을 것이네그들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할지라도후인들은 반드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어 엄중한 평가를 내릴 것일세.”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가치관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때의 해석 또한 그 해석을 하는 사람의 가치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역사의 해석을 둘러싼 민감한 상황에서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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