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이현진 지음 / 글항아리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죽음 이후 조선왕 정조

모든 죽음은 안타깝다살아생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와는 무관하게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것이다그렇다면 모든 죽음은 똑같은 무게를 지닐까살아생전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깊은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이는 무엇으로 나타날까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이지만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공식적으로는 신분의 차이가 없어진 현대사회에서도 죽음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생전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르다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는 생전 신분에 의해 죽음이후의 모습도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드러난다신분사회 최고정점에 있는 왕의 경우는 어떨까왕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신주가 종묘에 봉안되어 상장례가 끝나는 3년 동안의 기록을 통해 왕의 죽음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었던 왕들의 죽음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조선왕 중에 그렇게 안타까운 죽음에 정조를 빼놓을 수 없다정조의 죽음을 두고 독살설이 제기되는 등 의문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왕의 죽음정조의 국장은 바로 조선 왕 정조의 죽음을 기록한 공식적인 기록인 의궤를 통해 국장의 전 과정을 살피고 있다.


저자가 서술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 의궤다의궤는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경과를 그림과 함께 기록한 일종의 공식적인 보고서다특히 흉례 관련 의궤가 많이 제작되었는데이는 곧 국왕의 장례식에 상당한 물량이 투입되고 엄숙한 의식이 행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를 근거로 삼아왕의 죽음정조의 국장에는 크게 두 가지 분류를 국왕의 죽음에 대해 살핀다우선, ‘1부 조선 왕실의 국장 형성과 국장 관련 문헌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상장례가 유교사회인 조선에 어떻게 정착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세종실록오례가 정리되면서부터 국조오례의이를 바탕으로 다시 국조속오례의에서 국조상례보편까지 상장례에 관한 변천과정도 살필 수 있다더불어 고려와 조선의 상장례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 이유도 알아볼 수 있다.


1부의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2부 정조의 국장 절차에서는 정조의 국상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살핀다정조 사후 설치된 국장도감에서 국장에 대한 모든 일을 담당했다. ‘정조국장도감의궤에는 정조가 승하한 뒤 신주를 봉안하기까지의 국장에 관한 온갖 일이 다 기록되어 있다이를 바탕으로 햇수로 3,만 27개월에 걸친 정조의 장례절차를 따라가고 있다.


유교 사회 조선을 지탱해온 사상적 바탕엔 충과 효가 있다. “살아 계시면 예로 섬기고돌아가시면 예로 장사지내며예로 제사지낸다.” 이 충과 효의 집결은 오례로 나타나며 그 중심에 흉례가 있었다그렇기에 이 흉례의 과정을 살피면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 수 있다등장인물인물의 배치와 숫자를 비롯하여 수례를 비롯한 온갖 도구들이 구체적으로 실린 반차도도 함께 실려 있어 조선시대 한 장소에 와 있는 듯하다이 조선 왕실의 공식적 기록 속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그래서 저자의 말대로 죽음에 대한 석연치 않은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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