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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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김훈인데...?

간결하고 마른 글맛이 좋다글에 담고자 하는 심사숙고한 마음이 짐작된다사회와 역사를 보는 시각에 공감한다ᆢ독자의 한사람으로 작가 김훈에 주목하는 이유 중 몇 가지다그레서 그의 신간 소식을 언제나 반갑기만 하다.


글쓰기의 완성은 산문에 있다는 말이 있다산문에 담긴 글쓴이의 진솔함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다양한 작품으로 독자들과 익숙한 저자들의 삶의 진솔한 면을 산문을 통해 만날 수 있으며 또한 작가의 감정과 의지를 비교적 간편한 글을 통해 글쓴이와의 만나는 기회가 된다.


라면을 끓이며는 절판된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가려 뽑은 글들과 그 뒤에 쓴 글을 함께 묶어 발간한 책이다이 책의 출간으로 기존의 책과 그 책에 담긴 글을 버린다고 한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는 산문집은 저자의 말대로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에 주목한 글들이 담겼다글 다섯 가지 분류로 오십 편이 넘는 글을 실었다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직접적으로 만나는 문제를 다루는 글들의 모음이다특히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김훈의 가족 이야기부터 최근 저자의 관심사를 알 수 있는 바다 이야기동시대인들의 아픔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알 수 있는 글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표제 작 라면을 끓이며는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이들에게 뻔하고도 애잔한 음식 라면에 대한 김훈의 사회적 평가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조리법가지 담았다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처음으로 맛보았던 라면의 신기함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모든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 부른다모든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 부른다모든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 부른다모든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새 한 마리새 두 마리새 세 마리가 세상의 내용과 관계를 바꿔놓는다그 새들은 언어의 방향을 바꿔놓고없었던 의미를 빚어낸다세 마리는 가장 편안한 세상의 모습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세 마리가 날아갈 때도 새들은 역시 한 마리씩 날아가고 있다세 마리가 이뤄내는 세상 속에서 한 마리가 매몰되는 것은 아니다.” -‘중에서


꽃은 식물의 성적인 완성이며존재의 절정이다그래서 꽃은 스스로 자지러진다꽃에는 그리움이 없다꽃은 스스로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워하게 한다.”-‘중에서


김훈 문장의 힘은 버리고 벼리는 데서 온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몸글 등 뒤로 나아갈수록 연이어 나온다한 문장을 읽어가는 것도 버겁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한없이 풀어져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순위조작에 중심에 섰던 논란과 라면과 냄비의 뻘줌함이 마케팅이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출판사의 의도인지 작가 김훈과는 무관한지 그것하고는 상관없이 독자들이 판단하는 몫에 주목하고자 한다.그래도 김훈인데라는 말이 가지는 힘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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