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잃다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
하창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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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고 쓰고 시간이라고 읽는다.

20여 년의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스무 살 가까운 차이가 나는 동거녀와 2년을 살았다어느 날 갑자기 그 동거녀 봄이 사라졌다불혹의 남자는 이 순간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40년의 삶에서 20여 년의 결혼생활 이후 2년의 동거생활이 모든 것은 시간으로 수렴된다그 시간 동안 남자는 무엇으로 살아왔을까전처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고 동거녀의 말을 빌리자면 돼지가 되는 사람이 남자 몽인이다남자는 그 둘 다를 알지 못하고 살았다봄이 말없이 사라지고 나서 낯선 봄으로 돌아온 후에도 남자는 자신을 몰랐던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삶이라는 것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그 시간의 주인으로 살았던 시간을 얼마나 될까? 20여 년의 결혼생활에서도 2년의 동거 생활에서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세월인 40년 동안 알지 못하고 살았던 자아를 봄이 사라진 후 20시간 동안 자신에게도 떠난 여행에서 남자 몽인이 만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은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그 후 동거생활에서도 실패한 한 남자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동거녀 봄이 사라짐으로 해서 비로소 자아와의 만나게 되는 20여 시간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그려진다자신이 무엇으로 살아왔는지를 비교적 짧은 시간인 동거기간 2년을 기반으로 여전히 친구 같은 전처와 살았던 결혼 생활 20여년으로 외연이 확장된다여기에 머물지 읺고 결국 자신의 삶 전체로 넓혀 40년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봄은 시간의 봄일 수도 있고 사랑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이 둘은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기에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였다하지만 독자인 내 시각으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시간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이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간계념의 다양한 표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은 거리로 측정되는 도시가 아니라 시간의 도시다지척도 차가 밀리면 만 리가 되는.”

시간이 깊게 스며들지 못한 것은 예쁠 수가 없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마흔쯤 넘어야 발견된다는 것을결기와 강단이 곧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되는 아름다움.”

고요의 절정숨이 막힐 것 같은 정적을 가진 사람.”

 

이 모든 말은 시간이 쌓여야만 가능해지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시간이 겹으로 쌓여 비로소 완성되는 아름다움 등에서 20 시간, 2, 20여년 그리고 40년이 그런 동일한 시선으로 보게 되는 소설 속 장치로 읽힌다.

 

동거녀 봄을 잃어버리게 된 사건이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곤 살아온 40년을 찾아 나서게 만든 계기였다그 후 20시간 동안 만나고 겪는 사건들은 40년을 살아오며 주목하지 못했던 자아를 만나는 과정이 된다전처에게도 동거녀에게도 갈 수 없는 남자 몽인은 결국 어디로 가야 할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현재까지 올바르다고 믿어왔던사랑에 기대어 시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성을 허물어 버릴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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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9 0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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