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외사
설흔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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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자해지하게 해야 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성세대와의 충돌을 일으키는 새로운 세대와의 중도를 일컬을 때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우리 역사에서 이를 가장 적절하게 사용한 사람은 누구일까주목하기에 따라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겠지만 조선후기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갔던 북학파의 좌장 격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열하일기를 통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소위 법고 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억매이는 것이 병통이고창신한다는 사람은 상도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다진실로 법고 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글이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대한 다양한 억측과 폄훼를 포함한 이야기에 대한 답변에 해당하는 글로 보인다법고창신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글로 보인다.

 

연암 박지원이 활동하던 조선 후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기로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사상과 서구 과학기술이 도입되면서 사회전반적인 변화가 시도되던 시기였다반면 호학군주 정조 왕을 중심으로 변혁의 시대에 사상적 흐름을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문체반정(文體反正)은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가 당대에 유행한 소품체 문장들을 일소하고 순정한 고문(古文)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다.

 

설흔의 열하일기 외사는 정조의 문체반정의 주 대상이 되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출발하고 있다. “요즈음 문풍(文風)이 이와 같이 된 것은 그 근본을 따져보면 모두 박 아무개의 죄이다. ‘열하일기는 내 이미 익히 보았으니 어찌 감히 속이고 숨길 수 있겠느냐이자는 바로 법망을 빠져나간 거물이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한 뒤에 문체가 이와 같이 되었으니 당연히 결자해지하게 해야 한다.”는 정조의 의사가 담긴 편지를 박지원의 벗 남공철이 들고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열하일기’, ‘청장관전서’, ‘과정록’, ‘조선왕조실록’ 등 당대의 관련 기록들을 바탕으로 하면서 기록된 문장과 문장 사이의 ᆢ행간 읽기를 통해 '내면 읽기'의 진수를 보여준다사료에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을 더했다열하일기를 통해 조선의 대문호박지원의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던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더불어 열하일기의 주요문장인 일야구도하기’, ‘호곡장’, ‘상기등을 읽으면서 열하일기의 진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당시부터열하일기가 일으킨 파장은 이미 연암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런 조건에서 정조의 문체반정 아래서 느꼈을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고뇌와 연암의 벗들에게 닥친 문체반정의 파장 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한다정조의 문체반정과 연암 박지원 사이에 존재했던 인물들에 주목해 보자정조의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을 비롯해 젊은 벗인 남공철과 박남수가 그들이다이들 사이에 문체반정이 주는 심리적 부담감을 어떻게 대처해가고 있는지를 통해 연암 박지원의 심리적 부담감을 반증해 주고 있다.

 

설흔의 행간 읽기는 탁월하다. ‘책의 이면을 비롯하여 추사의 마지막 편지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등을 통해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아온 설흔의 이번 작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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