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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 - 조선 후기 천재 여항인들의 초상
설흔 지음 / 한국고전번역원 / 2014년 4월
평점 :
호산외기를 통해 본 조선 후기 여항인들의 삶
영, 정조 시대를 중심으로 한 조선 후기는 기존 양반 중심의 획일적인 사상, 문화일변도에서 벗어나 북학파와 같은 실학자 층이나 여항인들처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사회의 중심부로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학문과 사상분야에서 홍대용을 중심으로 한 북학파가 있었다면 시, 서, 화를 통한 문화의 중심에는 조희룡을 중심으로 한 여항인들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매화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그림뿐 아니라 글로도 이름을 떨친 사람이며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당시 여항인들의 대표적인 시사 모임인 벽오사(碧梧社)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그 여항인들을 기록한 ‘호산외기’의 자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 당시 사대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김정희의 제자라고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정희와의 관계가 일방적인 가르침을 받는 제자라기보다는 여항인들의 대표로 특별한 감식안을 가진 김정희의 평을 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조희룡이 기록한 ‘호산외기’는 조선 후기 여항인 42인의 전기집이다. 각각의 인물의 행적을 기록하고, 편마다 호산외사, 즉 조희룡이 짤막한 논평을 덧붙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여항(閭巷)은 원래 꼬불꼬불한 골목이란 뜻으로, 조선 후기 문헌에 의하면 서울의 비양반 계층의 생활공간을 의미한다. 이곳에 살았던 여항인들은 신분제 사회에서 능력이 있어도 높은 관직에는 오를 수 없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문학과 예술 방면에 힘을 쏟았고, 그것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펼치고, 자아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조희룡 역시 여항인이었고, 그런 그가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호산외기』이다. ‘호산외기’에서 ‘이향견문록’, ‘희조일사’, ‘일사유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기록에서 주목했던 여항의 문인, 예술가의 삶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예술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설흔의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은 바로 조희룡의 ‘호산외기’에서 14인을 선별하여 조희룡과 벗이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에 주목한 이유를 찾아나가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야기책이다. “제 눈을 스스로 찔러버린 화가 최북, 바둑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종귀, 연못에 쌀뜨물을 붓고 달을 감상한 임희지, 시에 목숨을 걸었던 김양원, 필법만큼 인품도 높았던 김홍도, 나라 밖까지 소문난 역관 시인 이언진, 천재적인 재능을 펴지 못한 채 요절한 전기 등”에 대해 벗과 나눈 이야기 속 중심은 여항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 읽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쓸어 버리고, 엎어 버리고, 던져 버렸다’이는 설흔이 호산외기를 통해 보았던 여항인들의 삶을 정리한 문장으로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분명, 양반 사대부 중심의 사회에서 갇혀 살았지만 자신들의 삶을 구속한 한계를 벗어버린 사람들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주목한 것은 조희룡이 여항인들의 삶을 전기로 기록한 마음이나 설흔이 그들의 삶을 통해 읽어낸 마음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통했다는 점이다.
설흔은 호산외기를 읽으며 그 글 속에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가 무엇일까에 주목했다. 바로 ‘행간 읽기’다.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 역시 그의 전작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등과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행간을 통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속마음을 헤아려 보고 기록으로는 마처 다 담지 못했던 무엇을 찾아내 새롭게 인물 탐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인물들의 남다른 행적 뒤에 감춰진 고뇌와 좌절, 포부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고 풀어냄으로써, 그들의 고민을 지금 독자가 함께 공감하고, 나의 문제로 돌이켜 볼 수 있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