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남쪽 어딘가

눈발 속

첫 매화 봉오리를

찾아서

 

 

김명국(金明國), 답설심매도(踏雪尋梅圖)

조선 17세기 중반, 모시에 수묵 담채

 

눈 속에 묻힌 풍경에 갇혔다. 산천초목 모든 것이 숨죽이고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겨울은 그렇게 사람마저 움츠리게 한다. 눈 쌓인 풍경이 주는 멋을 충분히 누리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아직 다 녹지도 않은 눈을 밟으며 찾아나서는 것, 바로 봄소식의 전령사 매화다.

 

'눈 밟고 매화 찾아가는 그림'은 조바심이다. 뭔가 기다리는 것이 있는데 시간은 더디 가고 소식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러니 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그것도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눈빛에 의지해서 단단하게 무장하고 길잡이 앞세우고 나귀등에 올랐다. “머지않아 가지 위에 따스한 볕이 쪼이면 매화 봉오리가 살포시 실눈을 뜰지 모른다.”어찌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있을까. “겨울 끝머리에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퍼뜨리는 농주미인(弄珠美人) 매화. 간밤 꿈속에 선비는 '구슬을 희롱하는 미인'을 보았다.” 이미 나선길인데 왜 뒤를 돌아다보는 것일까?

 

집 앞 나무는 가지가 메말라서 뼈만 남았다. 단지 나무뿐 아니라 산도 물도 모두 얼어 자연의 뼈다귀를 드러내었다. 성기고 메말라 보인다. 겨울 풍경을 담았으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무엇인가 전해지는 것이 있다. 예각으로 틀어지면서 험상궂게 옹이를 드러낸 나무들. 잔가지 획을 게발처럼 뽑아 그렸기 때문에 해조묘(蟹爪描)라 부르는 이 필법은 혹심한 추위를 견디는 꼬장꼬장한 겨울나무의 혼이다.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 1600~1662년 이후)은 취옹(醉翁)이란 호도 사용했을 만큼 화원으로서 술을 매우 좋아했고 성격도 호방했다고 전해진다. 대표작인 달마도와 같은 선종화 외에도 산수화와 인물화 모두 잘 그렸다. 18세기의 화론가인 남태웅(1687~1740)청죽화사(聽竹畵史)란 저서에서 "김명국 앞에도 없고 김명국 뒤에도 없는 오직 김명국 한 사람이 있을 따름이다"라고 평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