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벽(卞相璧),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조선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어릴 적 자주 보아서 눈에도 선한 모습이다. 아장거리며 걷는 병아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미닭의 모정을 느끼기에는 어린 나이였을까? 볏짚으로 바람을 의지한 곳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 그 자체로만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변상벽의 모계영자도에서 단연코 이목을 사로잡는 부분은 여섯 마리 병아리가 어미닭의 주둥이 주변에 모여 있는 장면이다. 누구에게 줄까? 오주석이 한국미 특강에서 이를 걱정했더니 양계장을 운영하셨던 분이 "암탉이라는 게 모정이 아주 살뜰힌 동물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곡식 낟알을 하나 주워도 그냥 먹으라 휙 내던지는 게 아니라, 병아리 가는 목에 걸리지 않게끔 주둥이로 하나하나 잘게 부서 먹기 좋게 일일이 흩어 준답니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병아리의 솜털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해서 놀랍고, 어미닭을 중심으로 병아리들의 움직임에서 놀라운 모정을 담고 있다. 닭 가족의 나들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그림에서 정작 아버지 닭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오주석은 “꽁지깃이 길게 뻗쳐올라 기세가 장한 토종 수탉 꼬리를 함께 그렸다면 암탉과 병아리를 압도하여 다정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그냥 죽어버렸을 것”이라고 보았다.
오주석은 이 그림의 주제를 '살뜰한 모정(母情)'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도타운 모정이 살갑게 드러난 닭과 병아리 그림으로서 이렇듯 정다운 암탉 그림은 세상에 달리 없다고 단언하였다.
d; 그림을 그린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1775)은 영조 때의 화원으로서 특히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계(卞鷄), 변고양, 변괴양’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그의 고양이와 닭 그림은 세밀하고 사실적이며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볼 때마다 동물화의 매력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이는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면밀한 관찰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곧 사람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