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초롬한

고운 여인,

마음자락에

스며들 듯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미인도(美人圖)

조선 19세기 초반, 비단에 채색

 

盤薄胸中萬化春(반박흉중만화춘)

가슴 속에 서리고 서린 봄볕 같은 정

筆端能與物傳神(필단능여물전신)

붓끝으로 어떻게 마음까지 전했을꼬

 

이 그림을 그림 혜원 신윤복(申潤福, 1758~ ?)의 제시다. 이 여인은 누구길래 이런 마음을 담아 그려낸 것일까? 조선 시대엔 여염집 여인을 그리지 않았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기생이었을 것으로 본다. 조선의 기생은 쉽게 술과 몸 파는 여인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없다.

 

옛 기생의 격조란 사람 따라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랐다. 시문, 서화, 가무에서 예술의 절정에 오른 이가 있었는가 하면, 경전을 줄줄 외고 마상에서 활을 당겨 먼 과녁을 꿰뚫는 여장부가 있었다. 또 양반 아낙의 뺨을 칠 만한 굳은 절개를 간직한 기녀도 있었던 것이다.”

 

함초롬한 여인이 다소곳이 섰다. 손을 대면 부서질 듯 고운 아낙. 초승달 눈썹과 촉촉한 눈매가 꿈꾸는 듯하고, 반듯한 이마와 넓은 인당(印堂)이 시원해 마음 설렌다. 단정한 코에 앵도 같은 입술, 갸름한 얼굴은 애처로운 빛을 띠고, 동백기름 먹여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칼이 더없이 정갈하다.”

 

이 미인도를 놓고 후세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조선시대 미인의 전형이라느니 여인의 춘정을 그려낸 에로시트즘으로 읽기도 한다. 그림은 시대를 반영한다. 하여 확실한 것은 이 미인도가 담고 있는 조선 후기 한복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다는 점이다. 트레머리, 옷고름, 짧은 저고리에 옥색치마, 자줏빛 댕기에 버선발까지 다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압권은 눈에 있다고 보인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정면의 상단을 바라보는 눈빛이 보통이 아니다. 신윤복이 마음에 담은 여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리 표현했을까 싶은 마음이 절로 인다. 한낮 기생이었다면 제시에서 표현한 대로 마음까지 전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담을 수 없는 여인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영화 미인도를 통해 대중에 널리 알려진 신윤복은 그 최후가 베일에 쌓였다. 조선후기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3대 풍속화가로 산수화와 풍속화를 잘 그렸다. 특히, 김홍도와는 달리 양반 관료들과 여성들의 이중성과 위선을 풍자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혜원풍속도첩) 유교적 도덕관념이 강했던 시기에 양반들을 풍자하였으면서도 자신의 실명과 낙관을 밝히는 파격적이고 대담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처벌받지 않았고, 그는 자유분방한 예술세계를 구사할 수 있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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