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는

경치대로

대단했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 뿐

 

 

강세황의 송도기행첩 중 영통동구도(靈通洞口圖)

조선 1757, 종이에 수묵담채

 

18세기 중반 조선의 그림일하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눈에 익은 산수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그림이다. 하지만, 표암 강세황이 평안도 개풍군 오관산 영통동으로 들어가는 길을 그린 작품이다. 민둥산에 커다란 바위가 제각기 자리를 잡고 그 사이로 난 산길을 말 타고 가는 사람이 화가 강세황으로 보인다. 거대한 산과 큰 바위 사이 보일 듯 말 듯 한 크기로 그려졌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이 말구종과 말을 탄 사람에 있다.

 

왼쪽 상단의 강세황이 쓴 화제를 보면

"영통사 계곡 가에 어지럽게 흩어진 바위들은 정말 굉장해서 크기가 집채만큼씩하며 시퍼런 이끼로 덮여 있다. 처음 대했을 때 눈이 다 휘둥그레졌으니, 전하는 말로는 저 아래 연못에서 용이 나왔다고 하지만 믿을 만한 말은 못된다. 그러나 그 주변 웅장한 구경거리는 참으로 보기 드문 것이다."

 

지극히 단순화 시킨 산과 바위의 모습이 오히려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기존 옛그림의 산수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산과 바위를 채색한 느낌이 새롭고 더욱 사람의 크기를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그렸다. 자연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일수도 있지만 영통동구의 느낌이 화가 강세황에게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가는 놀랄 것 다 놀라면서도 제 정신만은 끝내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맑고 낙천적인 기분이 편안하게 작품 전체에 녹아 있다. 구성은 단순하며 바위의 세부 표현 역시 아주 간결하다. 특히 이 그림은 유별나게 개성적이고 이채로워서 비슷한 예를 다른 그림에서 찾아낼 수 없다.”

 

오주석은 그의 책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에서 영통동구도에 대해 한 말이다. 강세황이 활동하던 당시에 이미 서양화법이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강세황의 송도기행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후기의 유행한 화풍이다. 기존 중국의 화풍을 그대로 답습하던 것에서 조선 산수의 실경을 바탕으로 화가가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담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겸제 정선의 경우 남종화법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화격을 이룩하고 전통 실경산수화의 면모를 일신하여 새로운 진경산수화의 정형을 수립하였다. 진경산수화 작품으로 정선의 금강전도’,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강희언의 인왕산도’, 강세황의 송도기행명승도첩’, 김홍도의 사군첩등이 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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