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어찌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처럼

변함이 없는가?"

 

 

추사 김정희(金正喜) 세한도(歲寒圖)

조선 1844, 종이에 수묵, 국보 제180

 

시절이 하 수상타. 세상이 온통 권세와 이득을 쫓느라 분분하니 흙먼지 인다. 어제의 벗이 손바닥 뒤집듯 오늘의 원수가 되고, 그렇다고 진정 미운 사람도 없어서 누구하고나 쉽게 손을 잡고 웃음을 판다. 어느 세상엔들 이런 한심한 꼴이 없었으랴만, 돌이켜보면 세상이 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오주석이 세한도를 이야기하며 첫머리에 꺼낸 이야기다. 150여 년 전,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지에서 느낀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오늘의 현실이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옛글에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사람은 그것이 다해지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처럼 변함이 없는가?”

 

제자 이상적을 보며 김정희가 썼다. 세상에서 강제로 추방된 사람이 느끼는 감회가 고스란히 담겼다. 차가운 겨울바람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듯 갈필의 흔적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한양으로부터 천리 길 너머 그보다 더 먼 바다를 건넌 사람에게 세상인심은 등을 돌렸지만 늘 변함없는 한 사람의 마음이 있었고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안았다. 이상적은 나중에 스승 김정희의 부음을 듣고 평생에 나를 알아준 건 수묵화였네/흰 꽃심의 난꽃과 추운 시절의 소나무시 가운데서 이렇게 읊었다. 여기 추운 시절의 소나무가 세한도다.

 

세한도는 두 사람의 마음과는 달리 험난한 여정을 밟는다. 제주도에서 그려져 이상적에게 보내졌다가 연경까지 다녀왔고, 다시 김정희에게 갔다가 이상적이 소장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상적의 제자 김병선에서 그의 아들 김준학으로 2대에 걸쳐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이후 일제 강점기 경성대학 교수 후지즈키의 손에 들어가 광복 직전인 194310월 현해탄을 넘고 말았다. 그러다 천운으로 서화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일본 도쿄로 후지즈카를 찾아가 석 달 동안이나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양도받아 다시 우리 땅으로 오게 되었다.

 

세한도에는 세상의 매운 인정과 그로 인한 씁쓸함, 고독, 선비의 굳센 의지, 옛사람의 고마운 정, 그리고 끝으로 허망한 바램에 이르기까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석 자 종이 위에 몇 번의 마른 붓질이 쓸고 지나간 흔적에서 이러한 정서를 담았기에 문인화의 정수라 불리고 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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