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에 비친 달
정찬주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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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글에 주목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람의 마음을 표기하고 전달하는 도구로써의 문자 역시 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한글도 만들어지는 당시와 비교하여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의 가장 큰 변화는 1933.10.19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던 것을 다시 외국문자의 표현에 불리한 것이 있다고 하여 다시 변화를 거쳤다. 이로부터 사라진 글자로 인해 한글 창제 당시의 정신이 조금은 후퇴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인류가 만든 수많은 문자 중 가장 탁월하다고 평가받는 한글은 그 창제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보니 다양한 추측을 낳았지만 그 중심에 세종이 있었다는 점은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과 집현전 학사나 세종의 자식들이 밀접히 관련된 이 창제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드라마나 문학작품에서 다루어왔지만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작품이 있다.

 

정찬주의 천강에 비친 달은 바로 한글이 창제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사람으로 신미 대사라는 승려를 주목하여 한글창제 당시의 상황을 문학작품으로 엮은 것이다. 한글 창제과정에 세종과 더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기록에 남겨질 수 없었던 사연을 소설로 그려가며 당시 시대적 조건을 뛰어 넘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세종은 원경왕후의 4재를 기리는 천도재가 있던 날(세종 2(1420) 86) 아버지 태종에 의해 만들어진 사찰에서 신미와 만난다. 세종 당시 왜의 대장경 요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자문을 위해 다시 신미와 그의 스승 함허는 궁궐에서 세종과 만난 자리에서 새로운 글자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비밀스러운 문자 창제의 과정이 시작된다. 불교를 놓고 사대부들과 밀고 당기는 실랑이 속에서도 비밀스런 임무는 계속되고 세종이 밝힌 글자의 원리를 바탕으로 신미의 범어 문자의 원리를 적용하여 우리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자로 신미에 의해 불교 경전이 번역되고 이후 8년 만인 세종 25(1443) 1230일에 집현전 학사들을 모아 놓고 공식적으로 훈민정음의 창제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신미 대사는 어떤 사람일까? 신미 대사의 친동생 집현전 학사 김수온이 쓴 복천보강, 효령대군 문집, 조선실록, 영산김씨 족보등에 기록된 문헌자료와 신미 대사의 부도탑(보물 제1416)이 있는 복천암의 복천암사적기(福泉庵事蹟記)"세종은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信眉大師)로부터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게 했다"는 기록 등에 의해 그의 존재와 한글 창제과정에 관여한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작가 정찬주는 이러한 기록들에 의해 확인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신미 대사를 중심으로 한글 창제 과정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세종 제위 당시 조선의 분위기와 불교가 처한 현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선택한 사대부와 수백 년 이어온 불교의 사이의 마찰 등을 세밀하게 그려가고 있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왕가 속에 유지되는 불교에 대한 믿음은 문자에 소외되었던 백성들에게 불교의 경전과 부처님이 생애를 알리고 싶은 양자의 교착점이 되는 것으로부터 문자의 창제가 시작되었다는 시각이다.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 도천이 남긴 대나무 그림자는 섬돌을 쓸어도/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달빛이 연못을 깊이 뚫어도/물에는 흔적하나 없네에서처럼 섬돌에 미련을 두지 않은 대나무 그림자나 연못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려 하지 않는 달빛처럼 신미 대사의 한글 창제에 관한 흔적은 미련 없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찬주의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한글 창제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자유와 문명의 꽃을 피워 새 시대를 열어나가려는 열망과 의지는 국가나 국민들의 오늘날 한글에 대한 자긍심이 얼마나 있는지를 살펴 다시금 한글에 대해 주목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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