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어디로 갔나
서영은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이란 이름으로 선택한 세 번째 부인

작가와 작품, 어떤 구석이든 닮게 마련이다.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산물을 고스란히 내재하고 있다. 발표하는 작품 속에 그 내재해 있는 시대의 산물이 드러나게 되며 시대의 산물은 꼭 사회적 가치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로지 작가 자신의 경험인 사유의 과정에서 축적된 결과물의 표현일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물들의 이면 속에 그렇게 녹아 있는 것이 작가의 삶이 아닐까 싶다.

 

한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와는 별개로 발표된 작품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진다. 하여, 독자들의 해석에 의해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상반된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어쩌면 문학작품이 오랜 세월동안 살아남았고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이유가 이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부적절한 사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던 서영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배경으로 무던했던 세월 속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를 풀어가는 것이 작가에게는 숙명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영은의꽃들은 어디로 갔나는 그래서 오히려 덤덤하다. 세 번 결혼한 남자의 세 번째 부인으로 그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한 여성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싶어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이야기는 한 남자와 여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것도 사회적 관계인 결혼이라는 범주 안에 묶여 살아야 하는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런 사회적 관계를 풀어가는 작가의 시각은 자신의 삶이기도 했던 세 번째 부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살았던 두 번째 부인의 배려(?) 속에서 비교적 평탄한 밀월관계를 유지하다 그 두 번째 부인의 사망과 함께 이상한(?) 결혼식을 올린 후 세 번째 부인의 삶이 곧 남자와의 현실에서 부딪치는 일상을 그려가고 있다.

 

두 번째 부인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는 남자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녀가 겪어야할 현실이 녹녹치 않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 결정이 자신의 의지 보다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하고도 방법센서까지 동원해서라도 지키고자하는 남편의 공간에서 남편의 배려로 이뤄진 결과이기에 여자의 일상은 자유로운 생활과는 다른 길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자물쇠로 갇힌 공간이 남편의 집은 자신이 운명처럼 따랐던 남자의 집이다. 겹치는 방의 숫자나 잠긴 자물쇠의 숫자만큼 자신을 안으로 가두고 있던 남편과의 일상을 함께한다는 것, 어쩌면 어쩌다 찾아주면 그저 반갑고 행복했던 지난 세월의 자유로움은 반납해야 하는 것이기에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함께하는 일상에 사랑으로 이름 부를 무엇이 남아 있을까 싶다.

 

사랑이란 타인 속에서 내가 죽는 것이다남자가 한 여자를 붙잡아 두기위한 강압에서 출발한 말이다. 그 말에 순응한다는 것은 그 여자 역시 이 강압에 자발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각자가 상대방에게서 얻고자하는 자기만족의 감정을 사랑으로 부르는 것은 아닐까?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선 작가 스스로 삶에서 건져 올린 결과물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이 마지막임을 맹세합니다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시대가 변해 사랑의 모습 또한 변했다고 하지만 사랑이라는 보편적 모습에서 벗어난 자신의 사랑을 단속하며 지켜가고자 하는 의지로 읽힌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수많은 불합리한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싹트고 자라나는 감정의 가치를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독립된 인격체인 남자와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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