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냐 - 고은 선禪시집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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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뭘까?

때론,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춘의 시기를 지날 때는 몰랐다. 모든 것이 이성의 잣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 이성의 무한한 힘에 기대어 세상을 무서운지 모르고 지났다. 하지만, 하나 둘 나이가 들어가며 그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한계와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이 아마도 시가 아닌가 싶다. 같은 것을 같은 시간에 함께 보았지만 시인의 가슴에 담긴 세상은 놀라우리만치 다른 세상을 담아내고 이를 시어로 옮겨 놓은 것이 시라는 생각에 시인을 보통의 사람들과는 한 참 거리를 두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성의 잣대로 보는 세상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세상을 보는 것으로 시인의 가슴을 정의한다면 공감하는 분들도 제법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 시인 중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선후배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 고은 시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독특한 그의 시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다 한 순간을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비로써 이해되는 시들이 많다. 시대의 아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던 시인의 시 중 ‘선시’를 모아 놓은 시집 ‘뭐냐’는 어떻게 보면 이성이 모든 기준이 된 세상에서 그 이성을 내려놓고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시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뭐냐’가 담고 있는 감성적 접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가장 절친한 벗에게, 이웃에게, 세상에게 도대체 ‘뭐냐?’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스스로에게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한 처절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자책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은 대개 몇줄 되지 않은 짧막한 시어들로 되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 머리와 가슴을 스치는 깨달음의 감정을 시로 승화시켜 낸 성찰의 진수가 아닌가 싶기도 한다. ‘선시’란 사전적 의미로 ‘모든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적(禪的) 사유(思惟)를 담고 있는 불교시’라고 한다. 굳이 종교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해될만한 대목이다.

 

“오직 선은 마음뿐이다. 이 마음속의 진면목으로만 기존의 세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선의 목적이다. 일체를 부정함으로써 일체의 진실을 획득하는 선은 그 부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유로운 선문답과 선시를 낳을수 있게 된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향한 정진의 과정에서 또한 깨달은 순간 진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선시와 선문답이라면 일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도 그 삶 속에서 깨달음의 과정이 분명 잇을 것이다. 물론 이때 깨달음의 순간이 스님들의 그것과 일치한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시인이 시를 낳고 문학가가 작품을 낳는 과정도 이에 못지 않은 깨달음의 과정일 터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얻는 한 순간의 감동도 그에 못지않은 깨달음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고은의 선시에는 서슬퍼런 칼날이 곳곳에 번뜻이고 있어 사뭇 이성의 그 무엇을 잘라내고 있다. ‘그렇지!’, ‘맞아~’또는 ‘어?’, ‘이럴수가!’와 같은 느낌으로 공감하는 순간 시인의 선시는 어느덧 보통 사람들의 깨달음의 순간과 만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시인의 깊은 속내를 그렇게라도 느끼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작별

 

잘 있게

잘 가게

 

저 건너

 

어찌 살꼬

너 없이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삶의 무게에 억지로라도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순간에서야 온전하게 만날 수 있는 시인의 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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