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포근한 날씨에 마치 봄비처럼 내리던 비가 그치고 다시 차가운 바람이 분다. 맞다. 겨울이다. 겨울을 잊게 만드는 날씨는 잘못 찾은 집마냥 낫설기만하다. 그래서 겨울은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추워야 제 맛인지도 모르겠다. 올 겨울 유냔히 추위를 타는 것 같아 혹...나이든 것에 대한 반증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시간이 나서 시골집에 가는 길에 늘 눈으로만 보던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성질 사나운 바람을 타고 눈까지 날리고 있어 차에서 내리는게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볼까 싶어 옷깃을 여미며 길을 나선다.

 

몽한각(夢漢閣), 묘한 느낌의 이름이다. 그저 안내판으로만 관심을 가질때 이곳에서 보기 흔한 정자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란다. 담양 슬로시티의 심지내마을에서 대덕쪽으로 길을 가다보면 만나는 안내판을 따라 간다. 늘 지나면서도 큰길에서 얼마나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멀리 보이는 소나무가 이뻐서 보러갔던 길을 따라가니 500여m 거리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집이 보인다. 저곳이 몽한각이라하니 단순히 흔한 정자쯤으로 여겼던 내 생각에 헛음을이 난다.

 

 

 

   

 

소나무를 보려고 예전에 이곳에 분명히 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저 멀리 보이는 다른 소나무만 보고 말았다는 생각에 세심하지 못한 내 마음씀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그때 못 봤기에 다시와서 그 이쁜 소나무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소나무가 저런 위용을 나타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사람이든 나무든 성장하고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이리라. 이 소나무는 담양 매산리 소나무로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령은 350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참으로 긴 세월을 한자리에서 세상과 만난 것이다.

 

소나무 아래 비석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눈에 보이는 건물로 간다. 그런데 아뿔싸 문이 잡겼다. 심술난 바람에 눈까지 날리는데 정작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면서 높지 않은 담장을 기웃거려 본다. 다행이 담장따라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그곳으로 올라가니 집안이 훤하게 보인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본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이 기역자로 배치되어 있다. 마당엔 다양한 나무들로 조경이 되 있어 사람이 거주하기에도 적당하게 보인다. 좋은 건물과 이쁘 꾸며진 정원에 사람사는 흔적이 없으니 ...아니 이 건물 용도가 주거용이 아니라고 하니 사람은 살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지만 아쉬움이 남는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곳 몽한각(夢漢閣)은 어떤 유래가 있을까? 몽한각은 1974년12월26일 전남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 아곳은 조선 태종의 5세손이며 양녕대군의 증손인 이서(李緖)가 중종2년(1507) 이과(李顆)의 옥사(獄死)로 인하여 전라도 창평(昌平)으로 유배되었다가 그 뒤 중종15년(1520)에 유배에서 풀려나 계속 머물러 살았던 곳이다. 순조3년(1803) 양녕대군의 후손인 담양부사 이동야(李東野)와 창평현령 이훈휘(李薰徽) 등이 이 지방에서 관직을 지내면서 오랫동안 이서의 재실이 없음을 알고 지금의 몽한각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왕손의 몸으로 담양에 살면서 '한양이 그리워 꿈길에서라도 한강을 건너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이서의 글에서 따온 "몽한각"이란 이름을 당호로 내걸었다. 몽한각은 배산과 전경이 수려한 위치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곳에서 멀리 남쪽을 바라보며 햇살드는 마루에 앉아 있어도 좋겠다. 유배온 이서가 이지역에 살면서 먼 한양의 사람들을 그리워 했다니 왕족이면서도 유배 온 자신의 처지를 보며 사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을까? 그가 지었다는 낙지가(樂志歌)에 그 심정이 담겼을지도 모르겠다.

 

낙지가(樂志歌)는 전남권 가사의 효시 작품이라고 한다. '뜻을 즐기는 노래'라는 뜻이다. 14년 간간의 유배생활에서 그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귀양살이를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에서 기쁨을 찾으려 했고 볼 수 있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욕심없는 삶을 살고자했던 정서를 담아서 표출한 가사가 곧 낙지가라고 한다. 이는 세속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처사로 살았던 중국의 중장통(仲長統)을 흠모하면서 낙지론(樂志論)이라는 그의 글을 즐긴 나머지 이에 담긴 물아일체의 삶을 모방하여 가사를 창작한 것이라고 전한다.

 

350년 이상된 소나무 두그루가 몽한각의 양 옆을 지키고 있는 듯 하다. 이곳은 유독 우리 소나무가 많아 보인다. 만덕산 자락인 대덕면에 소나무가 많은 까닭이야 알 수 없지만 집으로 가고 오는길 이 나무들을 보며 빙그래 웃음 지을 수 있어 좋다. 소나무 앞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어 매화꽃 피는 때 다시 찾아 그때는 닫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몽한각의 내부를 살 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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