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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여 년 전의 외침이 유효한 까닭은?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후보들은 연일 공약을 발표하며 미래는 희망과 함께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한국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것이지만 얼마나 현실성 있는 정책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조건과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에 각 후보가 속한 정당이나 개인들의 성장과 그간 정치적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후보를 선택하고 선택된 지도자에 의해 한국이 처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혼탁한 정치, 암울한 민생, 불평등한 외교, 외래문물의 수용, 교육정책의 혼란 등 수많은 현안은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200여 년 전 조선후기를 살았던 실학자들 역시 당시 자신들이 살아가던 조선의 현실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했다. 시대와 자신들의 신분적 한계에 부딪혀 좌절을 맞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바람은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 점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심에 ‘북학의’의 박제가가 있었다.
임용한의 책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는 바로 그 박제가의 삶과 사상을 살피는 책이다. 조선후기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 이덕무 등 실학자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박제가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에 대해 사실적 접근을 해가고 있다. 박제가의 출생과 성장, 청년시절 그리고 관료생활 등 그의 사적인 모습과 규장각 검서관과 현감 등 관료생활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민초들의 생활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승지를 지냈던 박평의 서자로 태어난 박제가는 신분의 벽에 갇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상황에 절망하지만 어릴 때부터 탁월한 통찰력과 판단력, 방대한 학식과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났으며 고분고분하지 않고 직설적인 성격 등에 의해 자신의 뜻을 펴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암울한 시대를 함께 나눈 이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백탑파로 칭해졌던 박지원, 이덕무, 유득경, 이희경 등이다. 이들과의 교류는 시대와 신분의 한계에 머물러 신세한탄만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에 의해 이들 중 박제가와 이덕무를 포함한 백탑파 4인방이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된다. 검서관 등용은 가난했던 생활이 안정됨을 의미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꿈꿔온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펼칠 기회를 만난 것이 되기도 한다.
박제가는 네 번에 걸쳐 중국을 방문하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이 안고 있던 사회구조적 모순을 타파할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이 북학의라고 볼 수 있다. 북학의는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적극 수용하고, 우리 것을 버려야 한다는 ‘중상주의’ 개혁을 중심에 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제가의 이런 앞선 주장은 당시 기득권 층 뿐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이었다. 국수주의적 경향성이 농후했던 당시 상황에서 다소 과격한 사상을 담고 있는 북학의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 책은 조선후기 실학자와 백탑파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점들을 담고 있다. 박제가와 이덕무, 이서구, 백동수 등과의 교류나 처가인 이순신 후손들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정약용과 박제가의 교류도 비교적 자세하게 밝히고 있어 조선후기 선각자들의 삶과 인적 교류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박제가의 삶과 사상을 밝히며 그의 외침을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 의미로 되살려 내고 있다. 더불어 17~18세기 조선 후기의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들에 대해 구조적 모순과 한계라는 시각을 통해 살핀다. 막연하게 생각되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오늘날의 삶과 비교하며 무엇을 놓치지 않고 봐야 하는지 또한 알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욕망보다는 나라와 백성의 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관심을 가졌던 박제가의 외침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은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