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산문.시편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주영숙 엮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암 박지원의 글에 빠지다

오래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리출판사, 2004)를 머리맡에 두고 오랜 시간을 걸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우선 역사인물 박지원이라는 사람의 유명세와 세간에 떠도는 작품에 대한 지명도에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기억으로는 내용의 친근감이나 호기심의 정도로 볼 때 그리 썩 감동 깊게 읽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워낙에 많은 분량이었고 기어이 다 읽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작용하였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집중하지 못하고 글자만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후 다른 경로를 통해 200여 년 전 북학파를 중심으로 한 우리 선조들의 글을 접하면서 우리 고전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찾아서 읽었던 우리 고전의 맛을 하나 둘 알게 되고 다시 연암의 글을 접하게 된다.

 

어떤 글이건 작가가 살던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다시 읽은 연암 박지원의 글에서 독특한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어쩜 연암이 살던 사회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깊어졌던 점도 빼놓지 못할 것이다. 조선 후기 영, 정조 왕의 치세에 힘입어 조선은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그때 청나라를 비롯한 외국의 문물을 어떻게 조선의 사회에 유용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일명 실학 또는 북학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고민했던 사람들이 북학파로 불린다. 그들 중 홍대용을 비롯하여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서유구 등의 글을 접하면서 조선 후기 사회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이다.

 

먼저, 당시 박지원의 글은 한자로 쓰여 졌다는 점이 다가가기 힘든 조건 중 하나다. 한자를 우리글로 해석하는 것이 만만찮은 일이 될 것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작품은 다 이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온다. 하여, 어떤 사람이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접근성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의 글이 탁월한 문장력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한자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맛볼 수 있는 것은 해석한 글을 통해서일 뿐이다. 주영숙의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산문, 시편인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로 연암 박지원의 글에 대한 매력 속으로 빠져 보자. 이 책‘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는 편저자 주영숙의 박지원에 대한 두 번째 책이다. 그 첫 번째가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소설편이 있다.

 

혼자 사는 즐거움, 네 이름은 네 몸의 것이 아니다, 이 쪽배 타고 떠나시면, 생각에 귀 기울이다, 붓으로 말을 하다, 매력적인 글쓰기란? 으로 엮인 마흔 네 편의 산문편에 주목한다. 작가가 사물을 보고 해석하는 정도에 따라 글쓰기는 달라질 것이다.

 

한 가지 예로 ‘매화를 파는 편지’를 번역한 ‘매화꽃을 사시오’에서 “만약 가지가 가지답지 못하거나, 꽃이 꽃답지 못하거나, 꽃술이 꽃술답지 못하거나, 꽃술의 구슬이 구슬답지 못하거나, 상 위에 놓아도 빛이 나지 않거나, 촛불 아래서도 성긴 그림자가 생기지 않거나, 거문고와 짝지어도 기이한 정취를 자아내지 않거나, 시에 넣어도 운치가 나지 않거나, 하나라도 이런 점이 있다면 영원히 마다하셔도 끝내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을 거요.”

 

일찍이 이덕무의 글에서 매화를 만들어 팔았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박지원의 이 글에서 보는 매화는 생긴 모양이나 우리 선조들이 매화에 담아 둔 정서상의 매력이 한껏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이 적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윤회’를 만들어 파는 사람의 강한 자부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연암 박지원의 산문들을 읽다보면 사물에 대한 놀라운 관찰력과 이해도가 넘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사물에 대한 무궁무진한 표현력에 놀라게 된다. 또한 ‘지구는 정말 둥글게 도는가? ’, ‘지구는 스스로 빛을 내는가?’에서는 박지원의 앞선 사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지향하는 바를 담아 글을 지었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쩜 자신이 내다보는 높은 이상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행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더불어 이 책에 실린 연암의 글 속에서 홍대용이나 이덕무, 서유구 등 반가운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