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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지음,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평점 :
세월의 고통이 지난 후 만나는 지극한 아름다움
자기 고백은 언제나 고독하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에 자기고백은 그 세상과 일대일로 맞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하여, 이런 고독한 순간을 마주하는 사람은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온 시간과의 마주함이다. 이 마주함은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을 기반으로 삼고 세상 속에서 이룬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를 두루두루 살피게 된다. 자신과의 만남과 사람들 사이 관계는 솔직함과 진실함이 무기가 된다. 솔직함과 진실함은 때론 무겁게 다가온다. 그 무거움은 자기고백을 하는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진중함에서 기인하기에 이를 대하는 사람에게 전염되어 함께 내면의 성찰로 이끌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기고백으로 만나는 사람은 도종환이다. 대학시절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와 영화로 만났던 사람이다. 아내를 잃은 절절한 사부곡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로인해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열정적인 선생님,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던 사람, 신념을 지키기 위해 투옥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교육운동가 등으로 알려지면서부터 더욱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에게 대중들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산골에 거처를 마련하고서 자기 안에 숨 쉬던 생명의 기운으로 다시금 대중과 소통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자기고백을 담은 고백서이면서 내면과 직면한 성찰의 결과를 가지고 대중들 사이로 길을 나섰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책이 그것이다. 충북 보은 땅에 마련한 황토 집에서 지난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되짚어본 자전적 이야기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 학교생활과 가난으로 어쩔 수없이 선택한 대학에서의 생활, 교단에서 선생님으로 학생들과 생활하며 느낀 아픈 현실 그리고 교육현실에 대한 대안을 만들고자 열정적으로 달려갔던 전교조 활동 등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시작한 문학, 문학 속에서 자신을 가꾸어 오며 겪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얻은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성장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내 시의 꽃밭’과 순수한 열정과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 청년기의 ‘접시꽃 당신’, 전교조 활동의 시기를 담은 ‘쇠창살에 이마를 대고’, 출옥 후 현실과 자신의 삶이 중심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와 지금 현재의 속내를 내비치는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저자의 이야기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느낄 줄 모르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이상으로 끌어올려 아름다워진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바꿀 줄 알 때 사랑은 더욱 깊어집니다. 텅 비워 청정해진 공간에 선함과 다디단 향기가 채우는 진공묘유의 봄기운. 거기서 비로소 공즉색(空卽色)입니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영화를 보며 눈시울을 적셨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 접시꽃만 보면 자연스럽게 도종환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러나 모두가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로 다신 만난 도종환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따스한 눈길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온기로 다가왔다. 우리 말이 아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따스함이 이렇게도 아름답고 좋을 수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책이다.
하지만,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대하는 오늘 그를 미처 알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지극한 아름다움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을 일으켜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바탕에는 극한 어려움과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지낸 후에서야 비롯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종환이 걸어온 길은 비록 많은 사람들의 일상 그것과 구체적 모습은 다르지만 마음 속 깊은 생채기를 남기는 현실의 고통을 그대로 담고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희망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리라.
인생의 시간대에서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는 어디쯤일까? 정오를 지난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막바지는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이기에 그 남은 시간을 살아갈 무엇인가를 가진 시기가 분명하다. 그 남은 시간 무엇으로 채워갈지 오직 자신 스스로에게 달렸을 것이다. 그 시간동안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로 만날 수 있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