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여행법 - 소설을 사랑하기에 그곳으로 떠나다
함정임 글.사진 / 예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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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소설 속 문학기행

‘문학기행’, 이 떠남은 언제나 상상과 현실이 만나는 시공간이다. 더 이상 상상으로는 멈추지 못하는 내적 기운에 등 떠밀려 떠나는 것이 ‘문학기행’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손에 드는 순간부터 제목과 더불어 내용 하나하나가 무수한 상상을 불러온다. 그 상상이 내가 살아가는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사람의 삶은 무게를 더해간다. 그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지점에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문학기행이라 이름 붙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게 그런 곳이 있었다. 청년시절 내 온 머리와 가슴을 지배했던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을 때 다가온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무대를 찾아가는 일이 더디기만 했다. 일 년이면 몇 번씩이나 정기적으로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벌교에 문학관이 들어서고 나서이니 오래 걸려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시골 촌놈이 읍내라도 구경 하려면 반드시 들렸던 곳이고 그래서 나름 익숙한 곳이지만 ‘태백산맥’의 원고지 숫자만큼이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온전한 발걸음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멀지도 않은 곳이지만 더딘 발걸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도 있었을까?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하지만 이제는 굳이 그 이유를 찾을 이유도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늘 떠난다고 한다. 소설을 사랑하고 소설이 탄생한 그곳으로 떠나는 것을 사명처럼 여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마치 구도자가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듯 그렇게 떠남 자체가 곧 소설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가의 여행법’의 저자 함정임이 그 사람이다. 소설과는 친밀도가 그리 높지 못한 일상이기에 저자가 '떠남'에 어떤 무게를 담고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것은 지극히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특별한 시각에 관심이 많다. 시인이나 화가의 눈이 특별해 보이는 것도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보통의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것을 보고 느끼며 결국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나타내게 하는 것일까? 책을 통해 세안과 만난다고 늘 상 말하면서도 그 책이라는 범주 안에 소설은 그렇게 많이 자리 잡지 못했다. 특별한 기회를 통해 문학 그것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속에 태어난 작품들을 만나면서 소설 속에 있는 사람들과 만남이 시작되었다. 아직은 그렇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보다는 그 사람의 유형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 이제 소설을 사랑하는 소설가 함정임의 발걸음을 따라 떠남을 시도해 본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 떠남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거리와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저자가 떠나는 그 길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 ‘말테의 수기’, ‘그리스인 조르바’, ‘더블린 사람들’, ‘적과 흑’,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가든파티’, ‘고령화 가족’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 60여권의 소설이 등장한다. 저자가 관심 있게 보았던 책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 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를 찾아 나선 것이다. 뉴욕, 프랑스, 독일, 남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걸쳐 저자의 발걸음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 소설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확인하는 소설가의 마음이 얼마나 클까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저자의 여행길에는 소설이 함께하기에 여행의 목적중 하나인 낯설음에 대한 느낌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가슴을 울렸던 소설이 늘 손에 들려 있고 가슴에 남아 있는 그 느낌이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에 어떻게든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저자의 특별한 눈에 늘 포착되고 독자들의 마음으로 전달된다.

 

“소설은 스토리가 전부가 아니다. 작품에는 작가 고유의 문장이 있고, 채취가 있다.”

“소설은 이야기이되 곧이곧대로 사실이기보다 어느 부분 ‘과장하면서 덧댄 이야기’, 즉 ‘꾸며낸 이야기’로 인식하는데, 과장인 줄 뻔히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주는 단계에까지 이르면 환상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소설을 사랑하고 소설가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저자나 독자가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속에서 만들어지는 ‘환상’에 주목하는 저자는 특별한 소설 속 장소에서 그 환상이 ‘현현’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현’하는 느낌은 저자의 자기만족을 넘어서 독자와 함께 공감하고 싶어 한다. 눈길이 머물렀던 장소의 사진들은 때론 상상의 한계를 현실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덤으로 얻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모든 여행은 자기만족이기에 삶과도 닮았다. 저자가 소설 속 그 특별한 장소를 찾는 것 역시 자기만족일 것이며 그 속에서 찾아낸 것은 사람들의 삶이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속에서 얻은 교훈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담아내고 있는 이 특별한 문학기행기를 읽고 있는 독자들도 자기만족으로 그 소설 속 주인공과 특별한 장소와 만남이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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