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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 몸에 관한 詩적 몽상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 몸에 대한 기막힌 시각이 돋보인다
한 때, 사람구경이 나에게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적이 있다. 번잡한 도심의 모퉁이에 자리 잡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받곤 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 멈추곤 했던 기억이 살아난다. 사람의 몸은 다양한 은유를 담고 있다. 그 은유는 쉽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도통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내 몸이 전하고 싶은 간절함을 알지 못하는 순간 외딴 섬에 홀로 버려진 고독을 느낀다. 이러한 느낌은 청춘시절을 보내는 동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을 가두는 일에 스스로 익숙해지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의 단절을 느낄 때도 함께 한다.
몸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몸을 생물학적 가치로만 생각할 때 알 수 없는 무엇이 분명 있다. 사람의 몸에 대한 규정이 역사적 맥락과 시대적 가치에 의해 담고 있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접할 때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경주의 ‘밀어’는 도발적인 표현들로 가득한 책이다. 몸을 생물학적 시각을 넘어 사회문화적 가치의 변화에 의한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이 지닌 의미를 은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대단한 인내와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은유는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에겐 신선함으로 다가서지만 사고의 범위를 넘어서면 고역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때론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 자기 인식에 대한 통찰의 시각까지 전해주기에 저자의 몸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들의 몸에 대한 통합적 시각이 아니라 개별화된 각 부위에 대한 깊고 자세한 관찰에서 출발하고 있어 보인다. 특정 부위를 지칭하는 말이 주는 어감이나 그 어원을 따라가는 것이나 상징성에 주목하여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눈시울, 가슴골, 귓불, 솜털, 뺨, 입술, 쇄골, 유두, 항문, 불알, 복사뼈 등 마흔여섯 가지 우리 몸의 부분들을 깊이 응시하고 있다. 때론 그 시각에는 관능적이고 은밀함마저 보인다. 이러한 신체부위에 대한 저자의 탐구는 눈에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철학, 언어학, 역사학, 민속학, 생물학, 의학, 운기학 등 인문적 고찰로 그 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시각이라 당혹감마저 일으킨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글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사진을 함께 담고 있어 저자의 시각이 특정한 신체 부위를 바라보는 느낌을 비슷하게나마 경험할 수 있다. 한 여인의 몸의 다양한 부분을 담은 사진은 아름다움을 넘어 저자의 시각과 어울린다. 만약 사진이 없었다면 훨씬 어렵게 읽히게 될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사진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가 저자의 글과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목선은 “잠자는 육신을 공중으로 데려갈 때 필요한 선”, 핏줄은 고독해서 몸속으로 숨어버린 살, “아직 발견되지 못한 채 물속 깊이 떠다니는 슬픈 대륙의 이미지”, 손가락은 “다른 문으로 가는 현기증”, 눈망울은 “몸속의 천문대”, 가슴골은 “육체 안에 감추어진 다락의 색”, 젖무덤은 “울렁증의 처녀림”, 머리카락은 “인체에 숨어 사는 풍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깊은 사고와 성찰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시 읽어가는 동안 안개가 걷히듯 살며시 드러내는 그 의미를 알게 될 때 비로써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이 이 부분에 있다고 여겨진다.
저자 김경주의 전작을 접하지 못했다. 이는 그에 대한 선입감이나 편견 같은 정보가 없다는 말이다. 하여, 이 밀어에서 전해주는 이미지가 저자를 알게 하는 정보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 정보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의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에 대한 흥미로움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