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편지 - 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
최인훈 지음 / 삼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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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숨은 진주를 발견하다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다. 분명 담고 있는 내용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겉도는 듯하여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처럼 넘긴 책장을 다시금 돌아본다. 보통의 경우 관심사에서 벗어난 내용이거나 내가 받아들이기에 범위를 넘어선 내용이 대부분이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경우 억지로라도 책장을 넘기며 내용에 몰두하는 경우와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과감하게 책을 덮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든 선택은 독자의 몫이기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감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어렵게 읽은 경우 남에게 내세우지는 못하지만 뿌듯함을 안고 책장을 덮은 경험이 간혹 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 삼인출판사 발행 최인훈의 ‘바다의 편지’다. 내용이 어렵기에 우선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저자에 관해서다. 최인훈은 ‘광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가다. 저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장’이 그렇듯 저자의 작품은 무게감이 있다. 이 무게감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안고 있는 삶의 무게감과 동일한 맥락에서 얻어진다. 저자 최인훈은 소설가로써뿐 아니라 희곡, 비평 등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펼쳐온 사람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최인훈은 ‘광장’이라는 작품으로 인해 소설가로 각인되어온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최인훈의 사상사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책이 이 ‘바다의 편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의 편지’에는 작가 최인훈에 갇힌 이미지를 사상가 최인훈으로 확장시키는데 필요한 작품들을 모아 놓은 부분과 2003년 ‘황해문학’에 발표한 바다의 편지를 수록했다.

 

1부와 2부에서 접하는 최인훈의 글은 쉽게 읽히는 내용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인류문명이 걸어온 길에 대해 문명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하면서 그 근원으로 나아가는 길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3부에서 보여주는 현실인식에 대한 글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아내 미래를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희망을 찾아 그 희망을 현실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최인훈의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읽은 부분도 다시 읽어야 비로써 무슨 내용인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정독을 요구한다. 일상적인 사람들이 평상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문어체가 보여주는 현실과 다소 동 떨어지는 표현들이 그것이다. 내용의 무거움에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의 낯섬이 함께 작용하여 더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무거움은 내용의 진중함에 이끌려들기에 최인훈의 사상에 대한 접근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책에 함께 수록된 육성으로 낭독된 ‘바다의 편지’를 틀어놓고 한참 동안 다시 접하는 동안 글을 읽으며 넘어갔던 행간의 간격과 침묵의 순간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읽는 기회를 준다는 점과 저자의 육성을 듣는다는 경험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작품에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최인훈의 사유의 깊이를 보게 된 것이다. 역사와 문명, 인간의 존재조건 등과 같은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이 문학론이나 예술론으로 구체화되고 이러한 바탕에 작품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모아진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 대한 진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너무나도 고독하고 깊은 성찰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광장’,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화두’ 등은 최인훈이 발표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광장’이외의 작품들이 일반 독자들과 얼마나 만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 듯싶다. ‘광장’을 비롯한 저자의 작품을 다시 찾아 꼼꼼하게 읽어야할 의무감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작가와 작품 이 양자 사이에서 독자는 서로를 이어간다. 작가의 작품이기에 찾아서 보는 경우는 그 작가의 사상과 가치관에 매료되어 그것이 담긴 작품을 찾는 경우가 될 것이고 반대로 작품을 통해 작가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양자는 결국 작가에게서 만들어졌지만 독립적인 작품에서 만나는 것이 된다. 오늘 나에게 작가를 통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 책으로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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