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권력의 뒤안길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정치 쟁점 읽기
전웅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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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묘수, 유배에 얽힌 정치인의 얼굴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가들이 위임받은 권력을 개인의 치부나 더 많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보게 된다. 바로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 그것인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힘에 의해 이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앞에 지난 역사에 있었던 유배라는 제도를 떠올려 본다. 권력형 부정부패나 정경유착 등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을 그들이 근거하는 정치권이나 경제적 근거지에서 강제적으로 단절시켜 유배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유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 정약용에게 유배의 기간이 없었다면 그의 학문적 업적은 존재할까? 거의 20여년에 이르는 유배기간 동안 여유당전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서책을 완성하고 그 성과가 오늘날에 이르러서까지 주목받고 있다. 정약용처럼 이렇게 정치적 수단에 의해 현실로부터 단절을 강요받았던 유배라는 형벌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이 책‘유배, 권력의 뒤안길’은 우리 역사에서 유배라는 형벌이 시행된 과정을 따라가고 있는 책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에 이르는 기간 동안 유배와 관련된 정치적 사건을 추적하고 이를 살펴 유배를 간 사람들의 흔적을 담았다. 그렇다면 유배란 어떤 것을 이르는 말일까? 죄를 지은 죄인을 벌주는 형에는 다섯 가지가 있었다. 이를 오형이라고 하는데 중국 대명률에 근거하여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등을 말한다. 이중에서 유형에 해당하는 벌을 부과하는 것을 유배라고 말하고 있다. 유배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된 형벌로 인식되는 것은 유배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적 사건에 관련되어 유배를 갔다는 것에 의한 것이다.

 

유배와 관련된 이야기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이 책에서 삼국시대 이후 시대마다 굵직한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로 꾸며지고 있다. 유배가 주로 왕족이나 권력자들의 정치적인 이유로 행해졌던 형벌이나 보니 한 왕조의 흥망성쇠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왕권 중심의 나라에서 왕과 신하의 권력을 중심에 둔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벌어졌다. 왕위 계승과 관련된 왕족의 경우나 때론 신하들 사이에 권력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붕당의 이해요구에 의해 상대방을 무고하여 정치적 생명을 단절시키는 일환으로 벌어진 사건들에 의해 유배형에 처해진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서술이 중심이 되고 있다.

 

하여,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과 직면하게 된다. 멀리는 백제 의자왕에서 고려의 무신들의 란에 의해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을 맞이한 경우 그리고 조선시대의 갖가지 사화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거나 겨우 목숨은 부지하면서 유배길에 올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이유로 유배를 떠났던 사람들은 또 다양한 모습으로 유배생활을 했다. 그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정치적 단절을 당한 마음을 다잡아 학문에 몰두하거나 시문학에 그 마음을 담았다. 이후 유배문학이라는 말이 나타나게 된 것이 이러한 사정과 관련되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저자 전웅은 역사의 사건들을 통해 유배에 처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기존의 역사적 해석에 의존하여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를 단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조심스러운 시각을 나타내고 있어 보인다. 사료의 새로운 발견이나 발굴에 의해 새로운 역사적 평가가 진행되는 상황을 적극 반영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유배형은 원래 고급 관리용으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중죄인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막힌 아이디어이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사용되는 ‘묘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제도이다.’

 

저자가 유배를 규정하며 하는 말이다. 2000년대 우리나라 현실정치에서 보여주는 정치적 배려와도 통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정된 밥그릇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아웅다웅 싸우기는 하지만 그 밥그릇이 통째로 없어지게 될 상황에서는 한목소리로 밥그릇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역사 속에서 정치인이나 지금 현재의 정치인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인 것일까?

 

그렇더라도 때론 목숨을 걸고 왕이나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방에게 직언을 했던 모습도 함께 나타난다. 그들이 목숨을 담보로 직언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정치인이나 지식이면 한번쯤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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