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지식인의 위선
김연수 지음 / 앨피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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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위선과 역사적 책임을 묻는다

학문의 본질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조선 후기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왕 정조는 배움과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신하들에게 묻는다. 어떤 이는 아는 것을 실천하기가 더 어려우니 실천이 중요하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올바로 배우지 못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니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에 정조는 배우는 것에 방점을 찍으며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올바로 배우게 된다면 이는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배우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의 본질은 실천에 있을 것이다.

 

 

지식인(知識人)이란 어떤 사람을 이르는 말일까? 국어사전에 의하면 지식인이란‘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또는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식인에 대한 좁은 의미만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반면, ‘지식계급에 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규정이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지식인을 거론하게 될 때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바로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에 큰 의미를 두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지식인의 사명이라고 하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리라.

 

 

조선의 역사를 살펴볼 때 위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조선 사회를 이끌었던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층에 부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대가 무엇이고 그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일상과 정치적 활동을 했는지를 통해 조선 시대를 이해하는 한 축으로 삼는다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요사이 각광받고 있는 선비에 대한 시각이 다양화 되는 것도 이렇게 지식인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임무에 대해서 시각을 달리한 평가가 그 주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수가 쓴 ‘조선 지식인의 위선’은 왕권의 나라에서 왕과 대립하거나 협조하면서 조선을 이끌었던 사대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조선을 지탱한 사상인 성리학의 도입과 변화과정, 조선 건국과정이후 훈구세력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으로 사림이 등장하는 배경 그리고 사림들의 정치적 역할과 붕당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준경, 이황, 이이, 정철, 기대승 등 성리학의 대가들이 정치일선에서 보여주었던 행적을 통해 당파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작용하고 그 파장이 어떤 정국을 만들었으며 이후 일본의 조선 침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 그들에 대해 한발 나아간 해석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저자가 주목하는 시대는 선조왕의 시대다. 선조왕은 조선왕조를 이어온 계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다. 그 근저에 어머니가 후궁이었다는 점이다. 사가에서 태어나 명종 사후 왕위에 오르기까지 왕의 후계수업을 받지 못했고 왕위에 올라서도 대리청정의 기간을 거치는 동안 인순황후와 대신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선조시대를 주목하는 이유로 사림 세력이 정치의 주도권을 차지하면서 조선 역사의 정치권력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들고 있다. 사림 세력의 확고한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을 이끌어 왔던 사상적 핵심인 유교가 선조시대에 이르러 주자학 일변도로 정착되면서 사상적으로 일방통행이 이뤄지고 그 주자학으로 인해 정치가 시비의 문제로 바뀌고 타협과 조정은 실종되었으며 생사를 건 투쟁만 남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지만, 이를 돌보고 구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은 실종되었던 시대가 바로 선조시대였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배웠던 조선 유학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 사라지고 그들이 보여주었던 정치행보의 다른 면을 알게 된다.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뤄두고서라도 시대를 이끌어간 선각자, 지식인들이었던 사람들이 걸어온 행보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황, 이이, 기대승 등 유학의 큰 어른으로 조선 최고의 선비로 꼽히는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가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사회였다는 점 등 상식의 눈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학문은 현실세계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문은 현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해결책을 내 놓아야 하며 그것이 학문의 기본자세가 될 것이다. 하여, 출발점에서 다시 봐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와 결부되어 역사를 보는 근본 이유와도 맥을 같이한다는 점을 상기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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