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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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사상이 담긴 옛집을 읽는다

집이 사람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현실은 집이 가지는 본래의 가치를 생각하기 이전에 재산 증식의 일환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언제부턴가 사람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이나 조건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집을 마련한다는 의미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보다 큰 평수, 역세권, 집이 있는 위치 등을 고르는 이유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을 찾는 의미가 아닌 같은 크기의 집이라도 위치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현실을 반영하여 주거환경이 처한 조건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잘못이라는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집이 주는 본래의 의미를 찾아보자는 생각이다. 집을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면서 집 장만이 살아가는 목표가 된 현실에서 집의 주인인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집이 가지는 사전적 의미는 ‘자연적, 사회적 침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여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건축물’이다. 이러한 집의 의미를 충실하게 살린 시대는 현대사회라기보다는 선조들이 살았던 지난 시대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지난 시대라고 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를 의미한다. 그때도 일반 백성들은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여 여기서 이야기하는 집은 조선을 이끌어간 세력인 사대부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집은 주로 목재와 흙으로 지어졌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집은 대부분 이런 사대부들의 집이다. 우리가 옛집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집들이 선비들의 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바로 그러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을 이끌어간 주체 세력이었던 사대부들의 집들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집 주인의 독특한 세계관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집을 찾아내고 그 집이 담고 있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읽어 내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성향에 따라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삶의 지향은 일상생활에서의 몸가짐이나 자세뿐 아니라 주거지인 집이나 공부방의 역할을 했던 사랑채와 별채 등의 건축에도 반영되었다. 저자가 집을 읽는다는 의미가 바로 집에 담긴 그들의 사상을 엿보는 것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가이며 시인인 저자 함성호의 눈을 사로잡은 집들은 어떤 집일까? 독락당, 양동마을과 향단, 산천재와 도산서당, 고산 윤선도와 다산초당, 김장생의 임이정, 우암고택과 팔괘정, 윤증고택과 암서재, 남간정사 등이다. 이들 모든 건축물은 수 백 년의 세월을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렀다. 세월 속에서도 집을 건축한 집 주인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있으며 후손들에게 집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역사적 흔적인 것이다.

 

집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보통의 경우 집을 비롯한 건축물은 본다는 의미가 맞을 것이다. 집을 본다면 무엇을 보는 것일까? 건축물인 집이 무엇으로 어떻게 지어졌는가가 우선이 될 것이다. 건축자재는 무엇이고 어떤 형태의 집이며 몇 칸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비롯하여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등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보는 것이리라. 하지만, 저자는 집을 읽는다고 한다. 이 읽는다는 점에 주목하면 같은 집을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관심을 가지고 읽어가는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건축물에 대한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느끼게 된다. 우선, 저자의 조선시대를 뚫어보는 역사적 지식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주목된다. 조선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지태해온 학문적 배경이 되는 성리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역사학자나 사상가들을 넘어서는 혜안이 보인다. 하여, 저자의 눈에 보이는 집은 그냥 집이 아니다.

 

저자는 한국 건축사는 당대의 지배이념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변화 한다는 것이기에 양식사가 아니라 정신사로 읽어야 한다는 가설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 책을 집필하는 동기였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집은 건축물 자체가 주목되는 것이 아니라 그 건축물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지는 점을 동시에 봐야 한다고 한다. 하여 조선의 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위치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점을 주목한 책이기에 눈으로 보여주는 측면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집을 볼 수 있는 사진은 한정적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그 사진 또한 독자들의 눈을 제한한다. 이런 구성은 집을 읽는다는 관점에 충실한 반영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글을 통해 머릿속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의 시각으로 볼 때, 퇴계 이황이 지었던 도산서당, 우암 송시열의 암서재와 팔괘정, 고산 윤선도의 보길도, 다산 장약용의 다산초당, 윤증의 고택 등은 그냥 일반인이 살아가는 살림집을 넘어 그들이 지향했던 학문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긴 또 다른 세상을 구현한 것이다. 그렇기에 집이 위치한 곳이나 담장하나 대문이나 마당 등에 그들이 담았던 학문의 세계는 일상으로 회귀되어 구체화 된다. 저자는 이를 차분한 발걸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의 눈으로, 옛 사람의 삶이 담긴 역사적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적인 눈으로 때론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집에 담고자 했던 학자들의 학문과 세계관 그리고 조선을 이끌었던 사상가들의 사상사를 함께 읽는 재미를 전해주어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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