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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치세어록 - 난세를 사는 이 땅의 리더들을 위한 정조의 통치의 수사학 ㅣ 푸르메 어록
안대회 지음 / 푸르메 / 2011년 11월
평점 :
글에 담긴 정조의 진면목을 살피다
왕조의 나라에서 권력의 중심은 왕에게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왕조국가 조선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조선은 권문세도가들을 중심으로 한 사대부들의 권력과 왕권이 상시적으로 충돌하며 양자의 힘의 구도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었다고 보는 측면이 강하다. 왕권이 강했을 때는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왕을 중심으로 정책이 집행되었으나 그러한 시기에도 신하의 견제를 상시적으로 받았다. 이렇다 보니 왕은 때론 명목상 왕일뿐 일 때도 있었다. 당파에 의한 무수한 사화가 이를 증명해 준다.
500여 년 동안 27대 왕을 이어오는 동안 치세를 잘하여 기억되는 왕으로는 몇 명이 되지 않는다. 조선을 개창한 태조야 그렇다 치더라도 조선 초 세종이나 세조를 비롯하여 후반기에 와서 영조나 정조 등은 나라를 반석위에 올리며 민본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왕들이다. 그 중에서 할아버지 영조의 후원으로 왕위에 올라 재위기간 24년 동안 당쟁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불운과 관련되어 어려운 시대를 보냈다. 하지만 정조는 치세기간 중 탕평책에 의거하여 인재를 등용, 서적보관 및 간행을 위한 규장각 설치,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 활자를 만듦, 실학을 발전시킴, 문화적 황금시대 등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김 왕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재위기간동안 정조 왕이 이러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근원한다고 봐야 하는가? 안대회는 그의 저서 ‘정조 치세어록’을 통해 글쓰기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대 통치자들 중에서 정조만큼 글을 많이 쓰고 남긴 왕은 없었다고 하면서 학문하는 왕으로써의 정조를 살피고 있다. 이 책에 담긴 글은 정조의 글을 모아 엮은 ‘홍재전서’를 중심으로 ‘일성록’ 등의 자료에서 몇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선별하고 이 글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달았다.
저자 안대회는 정조의 어록에서 선별한 글을 나라의 근간이 되는 힘, 공부,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 임금의 길, 인재에 대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법, 신하에게 이르는 말, 공정한 나라를 위함, 인간 정조를 엿보다 등 총 8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묶었다. 왕으로써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권력의 중심에서 신하들에게 내린 교서,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비롯하여 인간 정조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글들이다. 특히, 난세로 표현되는 현대 정치를 돌아볼 때 지금도 정치가들이 머리에 세기고 살펴야 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정치의 근본이 무엇인지 살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길은 백성에게 달려 있고, 백성을 배양하는 길은 먹을 것에 달려 있으며, 먹을 것이 풍족해야 교육이 가능하다. 교육하고 난 다음에도 반드시 조심스럽게 지켜주고 도와주어 이익을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나라를 보존하는 큰 근본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3년 뒤 첫 번째 조참에서 반포한 선언에 담긴 내용이다. 조참이란 문무백관이 한 달에 네 번 대궐의 인정전에 모여 국왕에게 문안드리는 의식을 말한다. 정조의 정치 틀을 확인할 수 있는 글로 경제, 인재, 국방, 재정 등에 관한 정조의 중심 사상을 담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오늘날 정치에서 무엇이 중심이어야 하는지 살펴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유난히 학문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겼던 왕이 정조다. 또한 세손시절부터 써온 일기를 왕위에 오른 후에도 쓸 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정조의 면모는 학문에 갇힌 고루함보다는 가을 산 단풍든 모습이나 국화가 피어있는 풍경을 보는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궁중 음악의 곡조가 빠른 것을 보고도 세상이 돌아가는 세태를 짐작하여 이를 바로 잡기를 지시했다. 감성이 메마르면 세상을 보는 눈도 메마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이를 올바로 포용하려는 마음을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정조가 보여준 탁월함은 풍부한 감성에서 출발하고 있지 않나 싶다. 오늘날 정치가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