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의 향기
제운 지음 / 지혜의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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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는 수행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데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것일까? 한창 앞만 보고 뛰어가던 시절은 뒤를 돌아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도 많고 또 내일에 대한 희망과 꿈이 앞서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생활이 안정되고 사회적 지위 또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될 시기쯤에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진다. 일상을 살아가는 여유가 생긴 탓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는 것이 주는 또 다른 힘을 느끼며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 더 굳건히 발 딛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이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들의 경우는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매순간 자신을 돌아보며 깨달음의 걸음걸이가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하려는 수행자라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자신을 점검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산문의 향기’는 한 구도자가 걸어온 시간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지금 현재의 자신을 성찰하는 내용이라 의미가 있게 다가온다.

 

저자 제운 스님은 19살 나이에 출가하여 깨달음의 길에 들어섰다. 스님의 고백처럼 특별하게 부처님 법을 알았거나 그 법 안에서 자신의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출가하고 사찰과 선방을 두루 거치는 동안 부처님 법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더해간 것으로 보인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세속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곤란이나 어려움은 없을지라도 수행자로 살아가는 동안 경험했던 또 다른 어려움이 담겼다. 아름다운 여인을 대하는 모습이나 해수욕장에서의 일화 몸이 아픈 가운데 치료도 적절하게 받지 못하며 느끼는 심정 등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구도자로써의 모습 뿐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삶 속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기에 어쩜 수행자라는 신분에 대한 선입견을 배재하고 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점은 기존 스님들이 발행한 책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점이다.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구도의 길을 걷는 수행자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전이나 수행자의 규범에 매이지 않지만 그 속에 나타나는 구도자의 모습은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스님은 다양한 재주를 선보인다. 붓글씨, 집필, 선화를 그리는 등의 일상이 수행자의 삶과 그리 멀지 않은 일이며 그것 속에서 자신이 걸어가는 수행의 방편임을 알아 스스로를 성찰하고 있기에 산문을 들어서는 모습이나 산문을 나서 만행의 길에 선 스님의 모습이 한결같아 보이는 이유 또한 그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만행이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을 뜻하는 말이기에 스님의 글 속에 나타난 다양한 행적은 길고 긴 수행의 길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수행자의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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