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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역사를 보는 시각이 중요한 이유
조선왕조 500년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 왕위를 이를 왕세자가 아버지인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일이다. 그것도 한 여름날 여드레 동안 뒤주에 갇혀 있다가 죽임을 당한 일이다. 그 여드레 동안 누구하나 왕세자를 살려야 한다는 그 어떤 목소리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왕세자비조차 침묵하고 말았다. 그 많은 신하들은 어디로 갔으며 왜? 어떻게 해서 왕조국가의 다음 왕으로 내정된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덕일의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2007년 한국 역사학계의 파란을 몰고 온 ‘사도세자의 고백’의 개정판이다. 십여 년이 넘는 동안 대리청정을 했던 왕세자인 사도제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죽임을 당한 사건에 대해 그 일이 일어난 전후 사정을 각종 사료를 찾아내 밝히고 세자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나타난 오류를 지적하며 그 일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갖게 한 책이다.
이 책이 한국 역사학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거대했다.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그런 의견 중에서는 서울대 국문학과 정병설교수의 의견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해석이 잘못된 것이며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는 한중록의 시각이 정당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단지, 책 한권의 오류를 지적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학계에 팽배해 있는 학문의 권위적인 모습과 조선시대 일제침략기 그리고 해방정국을 이어온 사관에 대한 문제까지 얽힌 복잡한 문제이며 ‘사도세자의 고백’과 ‘한중록’의 차이만큼 좁힐 수 없는 벽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저자 이덕일은 ‘사도세자의 고백’ 개정판인 ‘사도세자가 꿈꾼나라’를 새롭게 펴낸 의도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음을 개정판 서문에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사도세자의 고백’에 대한 문제제기는 학문의 권위를 이용한 강압적 태도이며 그러한 태도는 우리 역사학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노론사관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것에 의해 오늘날 식민사관이 존재하고 그 지위를 l용하여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닌 일반 독자들의 입장에서 어떤 입장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주장의 근거나 자기의 주장을 전재하는 논리를 펴가는 과정을 살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는 역사를 보는 근본적 시각에서 출발하여 보아도 되는 문제이다. 역사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할 수 있기에 시각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역사를 보는 이유는 ‘현재를 올바로 판단하여 미래를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서 보는 것이기에 과거의 일이지만 결코 현재와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전재로 시작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논쟁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덕일과 정병설 그리고 이주한의 안대회 등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논쟁이 그저 흥미로운 일로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앞에서 제기한 의문인 왕조국가에서 왕세자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가는 이덕일의 체계적인 논리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한중록’의 기록과 대조하며 한중록의 오류를 조선왕조의 공식적인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해 앞뒤 맥락을 살펴 사도세자와 정치적 대립을 했던 당시 노론을 중심으로 한 당파적 이해관계 그리고 왕조국가에서 왕의 권력을 능가한 신권의 상황 등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어 대중적인 관심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역사서로 보인다. 효종이후 정조까지 조선의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텍스트로 읽힌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통해 살피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의견에 대해 무엇이 올바른 역사적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왕세자 한 명의 죽음의 진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보는 올바른 시각과 현재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이덕일의 역사적 시각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