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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삶의 터전을 사랑하는 법
철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생활근거지는 한 곳이었다. 출퇴근하는 길 마주대하는 풍경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늘 새로운 모습으로 대하며 살아가지만 막상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만큼 잘 알고 있는 것 또한 그리 많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게으른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답사기가 주목받기 이전부터 전국을 돌며 살폈던 우리 것에 대한 관심보다 가까이 내 주변을 살피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살았던 도시를 떠나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다짐한 일이 있다. 옮겨간 지역의 역사를 비롯한 산재한 문화재와 현재의 모습을 재대로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마을 인근에 보물로 지정된 탑도 있고, 유서 깊은 사찰도 있으며, 미술관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먼저 둥지를 틀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흔적이기에 앞으로 살아갈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려는 마음에 옛사람들과 교감하는 삶이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렇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지역이 가지는 의미를 더해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한 사람이 있다.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한 후 저작활동도 하고 있는 이장희가 그다. 그가 마음을 담아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서울 시간을 그리다’를 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중심무대는 서울이다. 한 왕조 500여년의 도읍지였으며 현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의 현재의 모습을 오랜 시간 발품 팔아가며 스케치한 그림과 함께 담았다.
1000만이 넘게 살고 있는 도시, 서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주목한 것은 역사의 숨결이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의 모습과 현재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이 겹치는 현장이다. 그곳이 어딜까? 조선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는 경복궁을 중심에 두고 북한산, 서울성곽, 낙산, 남산, 숭례문, 경교장, 딜큐샤,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외곽을 이였을 때 고스란히 담기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궁궐 영역과 광화문, 청계천 효자동, 인사동, 혜화동 등이 위치한다.
우리는 서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가 발품 팔며 살펴본 서울은 정체성 혼란에 휩싸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역사는 무분별한 개발과 정책의 부재로 사라지고 있으며 새로운 서울은 훗날 모습이 어떻게 될지 상상을 불허하는 난개발이다. 하지만, 역사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현재의 모습 역시 역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남겨 후손에게 전해야 할지 성의 있는 고민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서울은 그저 그런 한 도시의 위상을 넘어선 무엇이 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수도이기에 한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여,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로 그 나라의 수도를 선택해 그곳의 모습을 통해 그 나라를 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500여년을 이어온 왕도와 현대가 조화롭게 어울려 우리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하게 후손의 몫으로 남기더라도 조상의 삶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 사라지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발끝에 체이거나 도로를 향해 있는 표지석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거운 것이 이 때문이리라.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감은 크다. 그 무게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현장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와의 결합은 이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케치는 현장의 모습을 온전히 전해주기엔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실감나는 스케치와 저자의 애정이 담긴 시각은 조화를 이룬다. 어느 점에선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정서까지 담아내는 장점이 있다고 보여 진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든 방문자에게든 서울을 훌륭하게 안내하고 있다.
저자가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힘에서 가능한 것일까? 현장을 스케치하고 이야기를 조사하며 글로 남길 수 있는 바탕엔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것이 아닐까? 독자들도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천천히 오랫동안 바라본다면 그때 바라보는 것은 이처럼 다정하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