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 - 우리 시대 작가 49인이 차린 평온하고 따뜻한 마음의 밥상
성석제 외 지음 / 뜨란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무엇이 아닌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생각하자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곳에 암자가 하나 있다. 현대인처럼 편리성과 빠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나 보다. 건장한 사내의 걸음으로도 한 시간여 산길을 올라야 비로써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절집은 오롯이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곳에 어떤 인연이 되어 화창한 봄날 오후 한나절을 꼬박 그곳에서 보냈다. 숲속 여기저기 피어나는 들꽃, 절 집을 지키는 전나무 사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스님의 귀한 차 한 잔보다 발아래 펼쳐진 세상이 더 눈에 들어오는 마당에서 서성이는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이 더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아직 내 마음을 절집으로 이끄는 것을 따로 있었다. 절집을 나서기 전 소박한 이미지의 주지스님과 함께한 저녁공양시간은 그간 여러 절집에서 맛보았던 절밥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깔끔한 식단에 몇 가지 음식이 놓이고 차분한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유독 손길을 잡는 것은 장아찌였다. 맵고 짠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로썬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맛깔 나는 음식에 스님과 함께하는 공양시간의 어려움도 잊고 자꾸만 손이 간 것이다. 절집을 나서는데 스님의 미소가 자꾸 뒤통수를 간지럽던 기억이 생생하다. 

먹을 걸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하며 절집의 절밥에 대한 관심은 더해만 간다. 무엇이 절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맛, 의미, 추억 등 제각가의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민족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온 오랜 시간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런 절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우리 시대 작가 마흔 아홉 명의 절밥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 ‘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이다. 2006년부터 ‘불교문화’에 연재된 원고를 모아 엮은 책이다. 성석제, 구효서, 윤후명, 권지예, 윤대녕, 이순원, 공선옥, 김영현, 임철우, 김사인, 안도현, 신달자, 박남준, 곽재구 등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해인 수녀와 김진 목사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발표하는 시가 한 가지가 아니듯 이들의 종교 역시 불교로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인연으로 절집에 머물고 절밥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불교에서 밥에 대한 의미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공양계이다. 공양에 앞서 함께 외우며 공양하는 동안 밥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세기는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내 놓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겹쳐 말하고 있다. 그만큼 공양계에 담긴 의미가 공감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먹을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무엇을 먹든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의 의미를 맛에 앞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마흔 아홉 명이 절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밥’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뿐 아니라 세상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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